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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마을['10.5.23]

2010.05.26 01:58

구인회 조회 수: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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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달란트
 

   어둠이 걷히고 빛의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가난은 가라앉고 돈 많은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분열의 시대는 가고 통일, 평화시대가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봄이 오지 않았나 봅니다.

   수많은 꽃 같은 청춘을 민족 제단에 산제사 드린 지가 얼마나 됐다고

   분열과 증오와 저주가 이 땅에서 저 땅 이 하늘에서 저 하늘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동족상잔의 비참을 겪은 지가 얼마나 됐다고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완악하고 입술이 더러운 자들이 전쟁과 복수의 칼을 갈고

   온 나라가 증오와 욕설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아직 가지 않은 길, 더 멀리 가야 할 길이 있는데

   남북을 넘어서 동양평화시대를 앞당기고

   세계평화와 인류 공영을 위하여 이바지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과

   나라의 임재를 위해 힘 한번 써보기도 전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아야 하는지요.

   역사 앞에 이 민족이 지은 죄가 너무나 큰가봅니다.

   이 민족의 흠과 얼룩이 너무나 많은 가 봅니다.

   돈 한 푼, 주식 한 주, 땅 한 평에 내 영혼을 팔고 우리 이웃을 외면한 죄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내팽개치고 힘없는 자를 억누른 죄

   놀부네 집은 쌀이 남아돌아서 주체 할 줄 모르는데

   흥부네 집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야 하는 현실

   결국 한 부모 밑에 탈선한 민족, 불의한 백성이 그 혹독한 값을 치르는군요.

   화를 입으리라 !

   남의 것을 먼지까지 긁어모으고

   남의 것을 전당잡아 치부하는 것들아...

   화를 입으리라.

   저만 잘 살겠다고 남을 등쳐먹는 것들아,

   재앙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고

   높은 곳에 둥지를 틀었지만...

   담벼락 돌이 원수 갚아 달라고 울부짖으면,

   집 안에선 들보가 맞장구치리라.

   화를 입으리라

   죄 없는 사람의 피를 빨아

   성읍을 세우는 것들아,

   남의 진액을 짜서 성을 쌓는 것들아[하박국 2장]


   하늘에서 불어오는 돌풍, 캄캄한 밤을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아모스 5:22~24] "


   영혼의 습격자, 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동광원의 김준호 선생님은 소금 안 먹는 식사를 하다가

   일 년 만에 중단한 바 있다. 소금 안 먹고 살 수 없어서가 아니라

   소금 먹는 사람들한테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해서 견디기 힘들어서다.

   이렇게 음식에 소금을 넣지 않고 밥만 먹어도 코가 예민해진다.

   감각이 퇴화되면 감성이 퇴화되고 감성이 퇴화된 사람들이

   영성을 얘기하고 예수님, 하느님을 얘기하는 것이 무슨 상관있겠는가?


   지난주에 진달래 어린이 달란트 잔치를 했다.

   그 덕으로 어른들도 덩달아

   비스킷을 같이 나눠 먹은 장면을 지켜보다가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났다.

   경전에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는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예수님은 왜 마지막 시간에 이 달란트의 비유를 던졌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류의 영혼의 스승들의 한결같은 테마요 목표 던져주는 의미는

   생명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모세의 유언에도 “너희는 생명을 선택하는 민족이 되라” 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의 의미는 생물학적 의미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키우고 발견하는 사람이 되는 데 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그 보물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는 모습을 보면 엇비슷하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괴롭히고 학대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 생명을 앗아간다면 생명의 주인인 네가 가진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생명 즉 영원한 생명에 초점이 있다.

   오늘날 경제 성장에 현혹돼서 의식이 천박한 속이 보이는

   그런 사람은 뽑은 나라다. 결국 그런 사람을 뽑은 의식이 뭐냐?

   내가 소유하고 있는 양量에 의해서 생명의 가치가 커진다는 사고에

   다름없다. 그것은 한 마디로 착각이다.

   모든 인간은 다가올 미래와 소유,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있다. 여기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결핍의식, 무엇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의식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게 인간의 무지요 탐욕이다.

   어떤 목표와 결과를 지향하는가에 따라 공격과 테러적 삶이 될 수 있다.

   삶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다.

   나는 과거 스웨덴, 스위스 같이 잘 사는 나라들 국민들이

   왜 자살하고 죽을 수 가 있는 지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꼴도 그렇다.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

   인간은 자유롭고 풍성하게 저마다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될 책임 있는 존재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심각하게 사는 거, 우울하게 사는 것이 죄다

   내가 나답지 못하게 갈 때 그게 다 죄가 된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고 내가 나답지 못하고

   풍성하게 살 삶을 방해하고 조이고 하는 의식이 바로 죄인의 상태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걸 알아차렸다.

   오늘날 우리는 밥 가지고 생존 문제 가지고 급급한 편이 아니다.

   텐에니어그램 수련생들과 '피아노'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그 영화 속에 여인이 옷을 벗는 장면이 나오는 데

   옷 벗는 데 한참 시간이 걸린다. 옷 속에 옷,

   자기 자신을 조이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을 통해서 그 당시 여인의 굴레를 보여준다.

   이런 상상 속에서 생명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물살이 거꾸로 가는 것과 같다


   나는 하느님의 뒷발질에 채여 목회를 하게 된 사람이라 한다.

   돌이켜보면 신앙이란 관점의 문제, 태도의 문제,

   하느님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가고 다 끝난 것이 아니라 물음을 가져야 한다.

   정말 내가 믿는 하느님이 어떤 하느님이신지 뒤집어 보고 의심해 봐야한다.

   내 에고를 쳐서 복종시키고 자본주의 물살 속에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예수 믿는 건 내 존재를 위해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풍성하게 살기 위해서 있는 거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일어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선지자가 말씀하시는 것은 인생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인간의 길, 우주의 법칙과 생명의 존엄함

   행복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

   용타스님 수련센터를 모 그룹에서 거금을 드려서 지어준 바 있다.

   이곳에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과 학교에서 지식만 가르치는 교과서와는 달리

   도리를 가르쳐 주는 행복교과서를 집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용타스님은 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교과서를 쓰는 사람이 먼저 행복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작업은 거짓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경험의 글을 쓸 때 그 글에 힘이 실리는 것처럼

   집필진과 수련을 통해서 의미와 지혜를 터득함이다.

   에리히 프롬은 학교에서 사랑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송이 꽃을 보는 것, 부부, 신자 관계나 알고 보면 하나인데

   이기심과 분별심 무지에서 사랑을 이해하고 나누지 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를 설명한 책이 사랑의 예술이다.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인생이 너무 짧다.

   거기에다 자신의 달란트 즉 재능의 꽃을 피워야 한다.

   내 안에 보화가 다 있다.

   어떤 이는 5달란트 상근기, 2달란트 중근기, 1달란트 하근기가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하지 말라고 해도 더 열심히 한다.

   진짜 공부할 사람은 안 하고 안 해도 될 사람이 더 열심히 한다.

   이 세상의 판도를 달란트 비유가 잘 설명해 준다.

   우리는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세월을 아끼고 제대로 쓰고 가야 된다.

   잘 사는 사람은 생명의 가치를 영원한 생명의 가치로 보는 사람이요

   다른 사람이 어찌 보는 지 신경 안 쓴다. 그럴 시간이 없다.

   생명의 가치를 아는 지혜는 지금 여기를 사는 거다.

   지금 현재를 갉아 먹고 욕하는 게 아니고 과거의 지혜를 통해서 의미와 힘을 준다

   다름 아닌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학부형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하여튼 생각하는 것이 정박아 수준에 있다.

   과거의 실패한 경험에 붙잡혀 현재를 잡아먹고 산다.

   그런 모델이 1달란트 가진 자가 상징해 준다.

   우리는 배우기 위해서 지구에 왔다.

   남을 지배하고 딱지 붙여 과시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배우고 지배하는 자로서 내 안의 에덴을 지배하고 가꾸기 위해서 여기 있다

   하느님의 법칙을 내 안에 실현 하기위해서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고

   우주의 법칙이 내 안에 적응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

   훈련하고 연습하지 않고서는 이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거짓 인생을 버리기 위해서 훈련하고 수련해야 한다.

   사람의 환상은 고치 짓지 않고 나비된 줄 안다.

   예수의 은혜는 그런 싸구려 은혜가 아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안 믿으면 구원 못 받는 다는 것은

   구원의 주권이 하느님이 아니라 내게 있다는 것이 아닌가?

   구원의 주권이 나한테 있는 게 아니다.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 체화 육화 기화의 과정과

   깨닫는 은총을 통해서 구원에 들어가는 것이다.

   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고 예수님 덕분에 천국 간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익산에 있는 어느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물음을 던졌다. “예수를 왜 믿죠”

   “천당 가려고요” 모두가 다 천당 가려고 교회 다닌다고 한다.

   “천당이 없으면요” 천당 없으면 예수 믿을 겁니까? 안 믿을 겁니까?

   “목사님은 천당 안 믿으십니까?"

   이 물음과 답변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천당이 없으면 예수 안 믿을 것인가? 그분이 방편인가 수단인가?

   예수 믿는 이유가 “나는 이렇습니다.”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는 그 때 “ 여러분이 간다고 믿는 천당 없습니다.” 고 말했다.

   성 프란체스코는 나는 천당 가려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좋아서 그분이 너무 좋아서 그 길을 따라간다고 했다.

   프란체스코는 예수님이 지옥에 가신다면

   그분이 좋아서 지옥이라도 뒤 따라갔을 것이다.

   내 안에 천국이 있으면 그가 있는 곳이 다 천국이다.

   내가 가면 그 땅이 복을 받고 천국이 되어야지 않겠는가?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그런 틀에서 깨어나야 한다.

   노자는 “ 이 세상의 과일나무는 저를 위해서 열매 맺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내 자신을 아낌없이 풀어쓰고 가야 한다.

   한 그루 과일나무만도 못한 인생을 살려고 억지로 살지 말고

   상선약수 上善若水 물과 같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내 별칭이 물이 되었다.

   나에게 인사해야 할 사람이 모른 채 홱 지나가버리면 잠을 못자는 게 사람이다.

   맨날 그런 식으로 그 생각만 하면 얼마나 에너지가 고갈되겠는가?

   그 사람이 상처 받은 것이 아니라 내 옷이 내 몸이 상처 받은 것이다.

   인간적인 에고, 거짓 나에게 속지 말라 !

   내가 이 아무개, 목사, 시인, 사장이 나인가?

   우리는 나 아닌 것들을 나라고 배웠다. 거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위험한 자라고 전하는 나는 위험한 자다.

   그런 에고는 죽어야 한다.

   하느님을 만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 더 이상 에고로 살 수 없고

   삶의 방식을 그런 식으로 연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만난다는 것은 거듭남이요 곧 에고의 죽음이다

   에고를 죽일 때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분 나쁘다고 술잔 기울이지 말고 하느님이 주신 에너지의 분량

   주신 달란트를 제대로 살고 가라. 하느님은 필요한 물질을 주셨다.

   각자 능력에 따라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셨다.

   우리에게 이 지구 공간에서 살 시간을 허락하셨다.

   용타스님 덕분에 120살을 무병장수하며 살게 됐다. 믿음대로 되는 것이다.

   우리 진달래의 문턱을 넘으면 130살을 살게 된다.

   내 말을 믿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구여행을 보내주셨는데

   우리를 빈손으로 가게 하시겠는가?

   여러 가지 많이 주셨는데 통장 비밀번호를 못 찾아서 돈을 못 찾는다.

   예수님이 그 비밀번호를 알려 주셨다.

   예수님 말씀에 집나간 탕자가 함부로 살다가 에너지를 탕진하고

   비참한 지경에 처하다 “ He came to himself "

   그 자신으로 아버지한테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이 그런 거다.

   온갖 법석을 떠는 세상에서 내가 나로 돌아가

   비밀번호를 알아 풍성하게 사는 방식을 알려준다.

   우리 홈피에 자주 글을 올려주시는 하늘꽃님

   필리핀 반군 교전 지역에서 11명의 아이들 거두고 사는 현장에 가서

   한 아이에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묻자

   돼지 한 마리를 갖는 게 소원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 이야기를 홈피에 올렸다.

   그러자 삽시간에 다른 아이들에게도 돼지를 주라고

   2,200마리 돼지로 불어났다고 한다.

   아, 이게 하느님의 계산법이구나.

   두 마리가 이 천 마리 이상 보내 주신다.

   5달란트를 10달란트로 불린 사람에게

   다섯 개의 성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으로 써 주신다.

   하느님은 그런 의미에서 이 지구를 방문하게 해 주셨다.

   내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고 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여한 없이 살다 가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이 본문을 중요한 뒷부분에 넣지 않았을까?

   여러분들이 나 자신한테 영원히 살아남는 사람

   여러분 자신한테 영원히 살아남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햇빛을 모아 불을 일으키듯이 더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아버지가 이 땅에 내려가 실컷 써보라고 빌려주신 생명의 달란트

   나는 이 생명의 달란트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땅 속 깊이 파묻어두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있는 내 존재로 존재하는 것에 만족하고

   내 존재를 이 땅에서 저 하늘 높이까지 끌어올리라는 준엄한 명령을

   거부한 채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생명의 달란트”

   제 가슴의 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듣고

   더 늦기 전에 땅 속에 묻혀 있는 달란트를 파냅니다.


    

                                                               s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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