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교회 진달래마을['10.5.30]
2010.06.01 17:47
진분홍 아, 까시야 !
진달래 수인이 유치원 영어캠프 진행요원의 날렵한 몸동작에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순서에 따라서 아이들이 따라가고 등나무 그늘 혼자 신발을 벗고 평상 위에 자리 잡습니다. 배운 대로 삼각다리를 딱 하고 책을 읽습니다. 폼 재고 정좌했지만 허리는 공벌레처럼 꾸부정한 채 졸다가 읽다가 그러는 사이 어느 남자분이 신신은 채 아이를 데리고 평상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니겠어요. 졸다가 그만 소낙비를 만난 것처럼 마음결에 썰렁한 파동이입니다. 잠복해 있던 신경질이 나는 것이죠. 이 평상을 신발을 벗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다니 ! “이 자식이 정신이 있는 거야, 뭐야” 속으로 한 방 먹입니다. 그러나 떫고 쓰지만 성질을 내는 것보다 좀 참아야겠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던 사이 영어캠프가 드디어 끝.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그럽니다. 그러던 차에 수인이 유치원 단짝친구 이름을 부르는데 그 친구 이름은 수정이, 반갑게 ‘수정아 !’ 아뿔사 같이 오는 아빠가 아까 평상을 신발 신고 돌아다니던 그 사람이 아닌가? “오메 큰 일날뻔 했습니다. 수인이 절친 아빠하고 한바탕 붙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그 순간 신발 신고 평상을 돌아다니던 그 사람은 사라지고 수인이 친구 수정이 다정다감한 아빠의 모습... ! 괜히 미안하고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머리만 긁적입니다. 할머니 24주년 추도식 익산 황등면 율촌리 두름박제, 꾸불꾸불 집에 가는 길 다른 차량하고 마주칠 새라 부리나케 달려가는 데 작은 재빼기 넘어 먼 곳에서 차 한 대가 달려옵니다. 차를 비켜줄 곳이 없는 외길, 이 시골마을에 하필 지금 차가 온담. 조금 비켜서 기다리면 될 테지만, 쏜살같이 달려가 그 차를 압박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차가 오히려 논가상으로 비켜서고 기분 좋게 달려가는 찰나, 그 차를 운전하시는 분이 어디서 많이 뵙던 분 “엥, 아버지, 우리 아버지 !!” 어떻게든 양보를 받아내려고 무지막지하게 압박했던 차 그 차를 운전하시던 분은 다름 아닌 제 아버지셨던 겁니다. 사태를 파악하고 난 저 “아이고 아버지 기체후일양만강... 그 자리에서 내려서 넙죽 인사를 올리고 “우라이, 우라이” 이 송구스런 사태를 만회해 보려고 꼬봉처럼 차 뒤를 봅니다. 아는 사람한테 잘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야박한 것이 인지상정 마주 오는 이름 모를 차량 운전자가 그저 남이 아니라 내 아버지요 내 어머니, 내 형제가 운전하는 차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사람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기계를 닮은 모습으로 지어진 것처럼 사람을 물질로 보고 어느 순간 비틀어진 기계의식으로 행동하게 된 나 이 시대의 고뇌는 소유의 부재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소멸과 정신적으로 넋 나간 인간의 고뇌가 아닐 런지요? 오늘은 관용으로 흘러내리는 물님의 말씀, 인도 빈민들의 안식처 “참새들의 둥우리”의 방장 백글로리아 목사님과 그분의 남편 조셉 목사님이 삼일 동안 유하다 가셨다. 원래 백글로리아 목사님은 동광원에 김준호 선생님이 공부를 시키러 로마로 파송한 수녀님이셨는데, 극적으로 조셉이라고 하는 인도분을 만나 결혼하고 두 분 다 목사님이 되셨다. 조셉 목사님은 파리, 모기도 잡지 않는 자애로운 분, 전혀 숨김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고 행동하는 분으로 알려졌다. 말씀을 듣는 과정에서 먹는 물 때문에 고생하시는 것을 알게 됐다. 한 이백만원 쯤 드는가 본데 서로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 지금 선거를 앞두고 전쟁이 날것처럼 야단법석인데 전쟁은 없다. 다만 정치적 계산 하에 서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승패를 떠나 서울에 대포 몇 발 만 쏘면 다 끝장난다. 수많은 외국인 투자자가 어디 그냥 있겠는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는 우리나라는 어찌 보면 미군 사령관의 군대다. 월남은 나라가 끝날 때까지 작전통제권을 주지 않았다. 지금 천안함 사태를 두고 몰아가는 작태를 보면 비이성적이다. 이유 불문하고 우리 젊은 장병들의 죽음과 관련 있는 자들이 국민들한테 거만한 태도로 협박한다. 지난 번 봉은사에서 도올이 현 상황에 대한 소신을 피력한 바 있다.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소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정주영 회장이다. 남북 긴장 상태에서 소떼를 몰고 북한에 갔다. 이 평화의 소떼 퍼포먼스에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정회장처럼 정치를 통크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주영 신화의 시작은 카센터에서 출발하였다. 어느해 겨울 부산 피난시절 미군시찰이 나왔는데 녹색으로 잔디를 깔아줄 사람을 찾았다. 어느 누구도 겨울에 푸른 잔디를 깔 생각을 못했는데 정주영 이라는 사람이 잔디 대신 들판의 보리를 파다 심었다. 그래서 신뢰를 얻었고 카센터에서 출발한 것이 오늘날 현대자동차란 큰 회사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차린 이 카센터에 불이 나 다 타버렸다고 한다. 직원 한 사람이 카센터에 방치한 시너에 불이 옮겨 붙어 대형 화재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시너를 방치한 이 직원은 죽을죄를 지었다며 처분만 바랄 뿐이었다. 일반사람 같으면 정색을 하고 책임을 추궁했겠지만 그는 뜻 밖에도 “괜챦아, 카센터 다시 지으려고 했어 오늘 저녁에 막걸리 파티나 한 번 하지” 라고 했다고 한다. 그 직원들이 이 말과 행동을 듣고 지켜봤을 때 “저 사람한테 내 인생을 한번 던져야지” 하는 마음을 안 먹었겠는가? 그 후로 정주영은 회장 중에 왕회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직원들이 기꺼이 신하가 되는 그런 큰 사람이 되었다. 소떼를 몰고 가는 장면을 보고 카센터에 관한 일화를 떠올리면서 정주영은 “한 재벌을 이룰 만한 걸출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긴 사람은 크게 용서하는 사람이었다. 칭기즈칸도, 정주영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용서하셨다. 의인을 성인을 죽이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에 대하여 ‘이들이 뭔 짓을 하는 지도 모른다’ 며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 그 것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된 것이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화내는 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 문제는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에 내가 갇혀버리는 것이다. 오년 십년이 지나도록 그 감정에 갇혀 있다면 누가 손해인가. 크게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은 빨리 벗어난다. 지혜가 있고 힘이 있다. 만약 그때 “너 당장 나가”라고 했더라면 사람 잃고 돈도 잃어버렸다. 아성으로 추앙받는 간디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성인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연기를 도넛같이 내 뿜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담배를 피우다가 중독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담배 살 돈이 필요했고 집에서 좀도둑질을 하게 됐다. 심지어 형 반지의 금 세공품을 떼다가 담배를 사 필 정도였다. 죄책감에 시달린 간디는 아버지께 이 모든 것을 서면으로 고백한다. 간디의 아버지는 이 편지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단단히 혼날 줄 알았던 젊은 날의 간디는 편지를 읽고 덮어 놓고 또 읽고 덮어 놓고 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그 끊기 어려운 담배를 마침내 끊게 되었다. 간디의 자서전에 ‘자비의 화살을 맞은 자가 자비를 안다’ 고 적고 있다. 잘못된 습관은 성내고 잔소리를 해서 고쳐지는 게 아니다. 아예 그 일을 더 허라고 하든지 자비의 방법, 용서로 극복할 수 있다. 크게 건너간 사람이 성인이 되고 힘 있는 사람이 용서할 수 있다. 약자가 베푸는게 용서가 아니다. 용서하는 마음은 강한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눈에는 눈의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모든 사람의 눈이 멀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 할 때 나머지 세 개는 어디로 향하는가? 유대인의 카발라 생명나무에는 세 개의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은 자비, 정의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연민이 자리 잡고 있다. 정의와 통찰력의 바탕에는 연민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의 자비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와 같이 존재의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한다. 연민의 기둥을 세우는 사례로 일본 불교 종파의 하나인 임제종에서 찾는다. 임제는 부처가 태어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고 말했다는 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부처님의 골을 깨서 개밥통에 던져버릴 것이다’ 고 화두를 던진 고승이다. 임제종의 맥을 잇는 임제종의 반케이라는 사람이 동안거를 주관하고 있었다. 종단의 모든 승려들이 와서 동안거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승려의 돈이 없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발칵 뒤집혀졌고 사람들이 꼴사나운 한 승려를 지목한다. 이 승려는 너무 억울해서 이 누명을 벗겨달라고 반케이 선사를 찾아간다.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제 누명을 벗겨주십시오” 수행처에서 어찌 남의 돈을 훔칠 수 있겠습니까?” 반케이 선사가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그대 말대로라면 죄인 하나가 나와야 하는데 그래도 좋은가?” 이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은 그 승려는 큰절을 올리고 말하기를 “작은 나를 벗어나서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마음을 얻고자 왔는데 그 동안 허망한데서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 승려에게 의심과 누명의 소리가 다 벗어난 것이다. 한 껍질을 다 벗어버린 것이다. 하느님을 찾고 여기 온 이유가 도둑놈으로 의심받은 사람이 반케이를 만나 깨달은 것처럼 그런 경지, 그런 세상으로 가고자 함이 아니던가? 줄곧 용서와 자비가 너희들의 의무라고 하셨다. 행복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용서하지 못한다. 에니어그램의 1번 유형은 남다른 기억의 저장창고가 있다. 그래서 한번 기억하면 평생 안 잊어버린다. 그런 머리를 좋은데 써야하는데 남의 실수나 비난과 같은 것만 기억하고 오랜 세월 스스로 괴로워한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겠는가? 쉽게 화내고 씹어대는 사람은 행복지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경원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심혈관 질환에 걸리기 쉽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용서에 걸려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 삶이 풍성하고 건강하게 살기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용서다 어느 수련원을 간 적이 있다. 이 수련원은 내가 죽고 영혼이 죽어 내 기운을 내보내는 수련을 한다. 집에 돌아가서 어떻게 빨리 죽을까? 한 번 해보라 나 역시 죽어보기가 힘들었다. 내가 죽는다면 익산 웅포 ‘덕양정’에서 한 번 죽어보기로 했다. 거기서 죽어보려고 했는데 물이 너무 흐리다. 내가 금강 똥물에서 죽을 수야 없지. 도리 없이 범선을 타고 남태평양까지 가서 떨어져 죽는다. 내 안에서 전개된 끈질긴 집착을 내려놓고 영혼이 되어 저 초에 집어넣는다. 눈뜨고 들어온 기억은 눈뜨고 내보내야 한다.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까 원한이 빠져나가게 된다. 내 보낼 때 용서와 기도까지 한다면 내 영혼이 얼마나 가벼울까? 비참하게 살 던 영혼이 해방 된다. 그 원리를 예수님이 가르쳐 줬다. 루이스 스미디스는 “용서의 수혜자는 나 자신이다, 첫 번째 수혜자가 나다” 내가 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헬라어로 용서라는 단어는 ‘아포루’ 묶인 것을 푼다는 의미다. 먼저 내가 나를 풀어주는 것, 나를 용서할 때 그 때 풀어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자다가 웃을 별 볼일 없는 것에 메여 소가 여물 씹듯이 다른 사람을 씹고 사는 사람이 있다. 김석봉 님은 “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원한을 내려놓지 못하는 걸까? 탄식한 바 있다. 이러한 죽음은 그 피해가 자기 자신한테 올 뿐이다. 내가 용서할 때 하느님도 용서하신다. 생명나무 도형을 보건데 살아있는 동안 자비의 저울을 쓰면 마지막 날에 하느님도 자비의 저울을 쓰실 것이고 심판의 저울을 쓰면 심판의 저울을 사용하실 것이다. 심판은 자기 심판이다. 죽어 영혼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보니까 완강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 있다. 그런 감정을 증폭해서 저장하지 말고 시원하게 내보냈으면 좋겠다. 아니꼬운 꼴을 보는 건 실질적인 호흡 실력에 달려 있다. 호흡이 15번 만 넘어가면 고쳐지게 된다. 힘이 있어야 한다. 달리는 자동차의 제동거리가 길면 부딪친다. 여기 있는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경사가 난다. 스스로 불편함이 떠오를 때 즉각적으로 내 보내라. 스스로 영혼이 되어 내보내라. 물님이 불재 언덕배기에 심은 북한산 진분홍 아카시아꽃 워낙 성장이 왕성하여 그 뿌리를 캐내고 잘라내도 또 나는 강인한 생명력의 붉은 꽃 아카시아, 원산지도 그러거니와 미운 오리새끼처럼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그 꽃 그 진홍빛 꽃이 오늘 내 앞에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미운 오리 인줄 알았는데 백조였나 봅니다. 그동안 못 생겼다고 무시하고 다 뽑아 버리려고 했는데... 못살게 괴롭혔던 그 슬픈 가시나무가 다 잊은 듯이 아낌없이 제 몸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몰래 흘려버린 진홍빛 눈물을 터뜨리고 제 꽃잎을 따 먹어보라 손짓합니다. 아카시아꽃 붉게 물든 마지막 오월 그 붉은 아카시아나무에게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가시나무 / 하덕규 si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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