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오의 베로니카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야수파 화가 조르주 루오
(Georges Rouault, 1871~1958)
전통적 사실주의적 화풍에 염증을 일으키고 강렬하고 추상적인
색채를 통해 그 시대와 아픔에 저항하고 도전했던 야수파 화가
아비규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폐허로 변해가는 세상과
날로 무너져가는 인심을 목도하면서 '이건 아니야 !'
비참한 세상을 지우고 싶은 절박한 심정에 무겁고 장중한
색깔을 섞어 켄버스를 확 뭉개버리는 묵직한 그의 그림들
그런가 하면 뒤틀린 현실에 신음하면서도 한줄기 섬광처럼
그 자신을 꽉 붙잡고 있는 분이 있으니 바로 고난 앞에선 그리스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연약한 짐승처럼
아무 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앞서 지고 간 그리스도에 대한
사무치는 연민과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에 귀의 歸依하게 되고
그의 그림 필치 하나 하나 그분의 영혼을 아로새겨 나갑니다.
하느님과 사람의 편에 서서 아무 죄 없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온갖 모욕과 갖은 욕설과 폭력에도 대항하지 않고
고통으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고갯마루를 향해 가는 길
그 속에서 걸음걸음 피맺히고 땀으로 범벅이된 예수님 얼굴,
그 비참한 얼굴을 수건으로 닦는 여인이 있으니 Vera Icona
진짜 이미지'란 의미의 '베로니카' 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드렸는데 그 수건에 그 분의
얼굴이 찍혀져서 뒤에 성녀로 추앙받는 인물
수많은 화가들이 수건을 든 베로니카를 화폭에 담았는데
루오의 베로니카는 그리스도 아이콘의 원형으로서
수건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은 베로니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수건과 관계 없는 베로니카, 마치 그 자리에서 그 여인의 행위를
지켜봤던 것처럼 그 얼굴을 상세하게 그려냅니다.
더군다나 그의 고뇌와 심상을 대변하듯 즐겨썼던 무겁고
어두운 색조가 아니라 마음 속 심연에 잠재하고 있던
그 자신의 맑고 고운 심성을 끄집어 내
마치 심중에 사랑했던 연인이나 어머니를 그리듯이
두려움과 공포, 저주의 굿판에서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그 때에
두려움조차 범접할 수 없는 지극한 연민으로 고난받는 님의
얼굴을 닦았던 한 여인의 선한 마음을 해맑고 순수한
파스텔톤으로 터치합니다.
어쩌면 루오는 이 그림의 이미지, 수건에 찍힌 예수님의 얼굴을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그 얼굴을 닦아드린 베로니카의 마음과
동일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루오에게 있어 베로니카의 수건에 찍힌 얼굴은 예수님의 진짜
얼굴이자 그 순간 베로니카의 얼굴이요
루오 자신의 얼굴이었던 겁니다.
수건에 찍힌 에수님의 진짜 얼굴을 그리고 싶었던 루오
루오의 그림 ' 베로니카'는 바로 수건에 찍힌 예수님 얼굴이며,
물님의 말씀대로 루오의 그림을 통해서 예수님과 베로니카
그리고 베로니카를 그린 루오가
외롭고도 쓸쓸했던 골고다 가는 길 세개의 십자가를 지고
같은 현실에 참여한 사람들로서 동시대의 의식으로 찾아옵니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