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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마을['10.6.6]

2010.06.19 13:16

구인회 조회 수: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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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고수가 되는길
 


    하느님께 푹 빠져 삶의 고수가 된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인간적인 멋과 매력이 물씬 풍겨나는 사람

    교황 요한 23세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잠시나마 푹 익은 사람의

    자유와 영혼의 채취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1962년 성탄절 그는“ 오늘로 나는 여든 두 살, 금년을 넘길 수 있을까?

    어느 날이고 태어나기 좋은 날이고 어느 날이고 죽기 좋은 날이다”

    죽기 전 날 사람들이 몹시 슬피 우는 것을 보고 ‘마리아의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서 말씀하시기를

   “힘을 내시오, 울 때가 아니요. 지금은 기쁨과 영광의 순간입니다”

    또 의사를 위로하면서 “교수님 걱정하실 것 없어요.

    여행 가방은 이미 꾸려 놓았습니다.

    떠날 순간이 되면 지체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에게는 “어느 날이고 어느 달이고 다 똑 같이 주님의 것이다.

    따라서 다 똑같이 아름답다,” 그것이 설령 죽음이라고 하더라도요.

    일일시호일 日日是好日

    마지막까지 자기 삶에 걱정하지 않고 그 죽음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

    삶의 고수 멋들어진 요한 23세의 잔잔한 미소가 전해집니다.



    또 한 분의 삶의 고수 물님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얼마 전 대전의 어느 정치인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현 정치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암담하다며

    왜 과거정부는 자신들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하여 보복을 하지 않고

    다 용서하고 관용의 길을 선택했는지 모른다는 불만이다.

    그 예기를 듣던 다른 분이 대답하기를

    과거 정부의 대통령들이 그걸 모른 게 아니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피를 보는 것을 피한다고 설명한다.

    피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함께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도자기를 보면 저마다 성격이 나타난다.

    도자기는 흙만 가지고 이뤄지지 않는다.

    불을 만나야 한다. 불을 만나지 않으면 그냥 흙으로 머물게 된다.

    테라코타, 토기는 700에서 900도의 낮은 온도에서

    도기는 1,000도 이상, 자기는 1,200도 기점에서 자기가 된다.

    사람으로 말하면 자연인은 흙, 토기 상태다.

    지성인은 인간의식이 깨어난 도기라 볼 수 있고

    예수님을 만나 하늘의 불로 구워지면 에고가 불태워지고

    고차원 의식의 진동수에 이르면 자기 즉 하느님의 작품이 된다.

    성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은 토기장이시다.

    하느님이 인간을 지구에 보내신 목적은 인간의 몸을 입고 있는 중에

    존재를 하느님의 예술작품으로 구워내는데 있다.

    그걸 경험하라고 이 세상에 보내진 것이고 지성의 빛으로

    영적 차원으로 존재의식이 진보해야 된다.


    순간순간마다 만물이 변형해 가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

    개망초 하나만 봐도 기가 막히다.

    어찌나 투지가 맹렬한지 홀씨가 날라 퍼지면 겉잡을 수 없다.

    식물은 나름대로 스케줄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 슈타이너에 의하면 7년 주기로 변화된다고 한다.

    모든 존재는 7년 주기가 될 때 민물게가 껍질을 벗듯이

    변화에 직면하고 변형의 위험한 상황에 이른다.

    이렇게 경험의 타임마다 하느님이 기회를 주신다.

    그걸 알지 못하고 붙잡지 못하는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

    우리가 지구에 온 뜻을 모르고 흙덩이 상태에서 머물다 허무하게 죽는다면

    귀중한 보석을 시궁창에 내던지는 것과 같다.

    믿음이란 나를 고귀한 존재로서 나에게 기회를 주시는 걸 믿는 거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물성을 버리고 토기에서 자기

    그 이상의 존재 그이상의 작품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포도와 포도주의 화학식은 전혀 다르다.

    나비는 애벌레의 성분을 단 1%라도 남아 있으면 나비가 될 수 없다.

    애벌레의 차원을 다 버려야 나비가 될 수 있다.

    이는 적당한 차원에서 멈춰버리면 실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정치적인 해방, 인간 자체로의 해방이 있듯이

    신약성서의 거듭남은 이 산천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어떤 해방도 의미를 상실한다.

    여기 임실만 하더라도 역대 군수들이 못 된 짓을 하다 징역살이하고 끝장났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준비 안 된 사람들이 저 사람이 하는걸 보니까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착각하며 욕망으로 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비만 오면 옷을 활딱 벗고 날궂이 하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자기 노출증 환자에 불과하다.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대게 엇비슷하다.

    경제 살린다고 하는 소리, 경제 해방 구호에 홀딱 속은 거다.

    목적을 이룬 다음에는 지들끼리만 해방이지 어디 대다수 서민들이 해방되었는가?

    이건 우리나라 사례만이 아니고 전 세계 역사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자기자신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은 사람들이 타인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헛구호다.

    자신한테 속고 있는 사람들이 내건 구호들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에고를 불태우고 새로운 존재가 된 사람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기독교에 배타적인 라즈니쉬 조차도 예수님을 최고로 꼽는다.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당대의 뛰어난 사람들을 제자로 삼았다

    예수님은 뱃사공부터 세리, 밑바닥 인생을 사는 평범한 짱돌 같은 사람들을

    생사를 초월하고 역사를 바꾼 사람으로 변형시킨 점에서

    다른 성인들과 달리 예수님은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성인들이 원석을 보석으로 바꾼 존재라면

    예수는 돌멩이를 금광석으로 바꾼 특별한 사람이라고 한다.

    성령의 불꽃이 사람들에게 임하신다.

    이 성령은 하느님의 마음의 한 작용이다.

    어두운 마음을 밝고 환하게 영감으로 기쁨으로 활기로 찾아오는 어떤 작용이 있다.

    불이 타면 열과 빛이 나는 것처럼 하느님 마음이 인간에게 골고루 작용한다.

    하느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빛으로 일어나고 작용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자연히 물러가는 것이다.

    진리의 빛이 이 성령이 나를 알게 하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게 한다.

    내 아버지가 하느님이라면 내가 곧 神인거다. 신성한 존재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위대한 존귀함이 있다.

    그 빛으로 나를 안 사람들은 사명을 알게 된다.

    그 목적과 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흙이 불을 만나 자기가 되듯이 하느님의 불을 만나

    하느님과 가까이 가고자하는 열망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을 가까이 하라, 그러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 야고보서

    나를 가까이 하면 나도 너를 가까이 하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참으로 믿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흙이 불을 만나고 가까이 하면 도기가 되고 자기가 된다.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드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자기 자신이 그 증거가 된다.

    지극한 행복을 경험하게 되고, 어떤 행복보다 본질적인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내 자신의 증거가 되고, 하느님 가까이에서 의식의 레벨이 높아진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의식이 천박한 상태에 있다면 그건 종교가 아니다.

    이 토기가 도기가 되고 자기가 되고, 알이 애벌레 단계를 거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최후의 자기완성 즉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그 증거가 예수님이 아닌가?

    예수님이 최초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모두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격을 갖게 된다.

    그것이 복음이요 기적이다. 그 기적이 내게서 이뤄져야 한다.

    이 지상에서 최고의 기적을 나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렇게 우리가 모여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기적이요 신비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기적에 대해서 생각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신비한 존재, 기적적인 존재요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 죽고 목숨으로 보장한 것이다.

    그 진실의 중요성을 소중한 목숨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 스스로 고통을 주는 방식을 청산하게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안에 용서와 감사가 없으면

    내가 아직 그 단계에 ‘못 들어섰구나’ 간파해야 한다.

    성령은 나를 기적으로 태우고 기적의 삶으로 안내하신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모든 것이 걸렸는데 지금은 하등의 문제가 안 된다.

    나한테 개 같은 놈이라고 하면 같이 개 같은 놈이라고 덤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저런 눈을 가졌을까? 연민의 마음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죄인은 없다. 다만 그 상태에 있을 뿐이다.

    배명식 목사는 내 시에 “타종교인은 없고 이웃만 있다’고 시평을 한바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야지 교파나 종교로 구분하고 만나는 것은 정말 싫다

    그런 사람이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말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생각이나 느낌 행동 직업 이 아무개가 나인 그런 의식에서 벗어나서

    존재 자체로서의 나,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 근원의 나, 본질적인 나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중국의 한비자의 이야기에는 “맹구”를 조심하라고 한다.

    아무리 인재를 아끼고 훌륭한 군주가 있더라도 주변에 그 인재를 받아들이고

    아껴줄 신하가 없다면 결국 인재는 찾아오지 않게 된다는 거다

    훌륭한 인재가 좋은 능력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주변의 대신들이 사나운 개가 되어

    이리저리 그 사람을 헐뜯으며 참소하니 결국 인재들은 모두 떠나고 

    그 나라에는 진정한 인재가 찾아오지 않게 될 것이란 말이다.


    오라의 에너지가 가라앉은 사람에게는 참 생명이 없다.

    머리에는 지혜와 영감이 가슴에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의 통찰과

    핑크의 에너지가 감돌고 아래에서는 장의 에너지가 용솟음치고 그래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해주시고 기대하는 것이 그것이다.

    눈만 뜨면 태양빛이 보이는데 우리가 장애물로 여기는 것은 아직 하수이기 때문이다

    삶의 고수가 되는 길을 간구하라.

    성령과 지혜에 대하여 기도하라.

    솔로몬이 천번 번제를 드려 원했던 게 뭐냐?

    천 번이나 제사 드려 얻은 지혜는 다른 사람의 가슴의 소리를 듣는 거다.

    예전에는 매사가 문제요 장애물이었는데

    이제 매사가 놀이터가 되고 웃을거리가 되는 변화가 찾아온다.

    전통놀이 중에 벽돌치기놀이가 있다.

    벽돌을 돌로 때리면 자기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너희들이 가까이 하면 나도 가까이 하겠다. 이는 하느님의 약속이다.

    예수님은 산천초목이 환영할 수 있는 높은 하늘이 되는 길을 제시했고

    실제 온 몸으로 보여주셨다.


    만물이 고통 받고 있다. 진인이 나오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에너지와 진리에 의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진인이 되기를 기다린다.

    하느님의 자기가 되면 그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당신들은 복 받은 사람이다. 나를 만났으니까 말이다.

    짧게 이 지구에 살아 있는 동안 복 있는 사람이 되라

    그대들로 하여 이 땅이 복을 받게 하라.

    모두들 힘을 얻어 다시 나가 복을 받고 복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존귀함에 대하여 쏟아내신 말씀에 우쭐해지고
    오늘도 복주는 이로부터 복을 한바가지 가득 받아 갑니다.

    한번은 어떤 승려가 백장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스승은 이에 되묻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누구인가?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