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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빛과 에너지를 발하는 사람

2010.07.28 02:09

물님 조회 수:6751

사랑의 빛과 에너지를 발하는 사람

 

창세기에는 인간 타락의 상징도시인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한 기사가 등장하고 있다. (창19장) ‘하나님과 인간의 전쟁’이라는 저서를 쓴 재카리아 시친은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광경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처럼 핵무기에 의해 파괴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결론의 근거를 성서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의 고대 재난에 대한 기록과 최근의 과학적 탐사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의 거주지가 기원전 21세기에 갑작스럽게 버려졌고 그 후 몇 백년 동안 다시 거주하는 일이 없었음을 발견했다. 오늘날 까지도 사해를 둘러싸고 있는 샘들의 물은 그 물을 마셔온 사람들에게 불임이나 연관된 질병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다고 한다.

 

 

 성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에 대한 진실을 아브라함과 천사들의 대화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멸망의 예고와 그에 대한 줄다리기는 공개된 비밀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곳에 의인 50명이 산다면 그래도 멸망하시겠느냐고 하나님께 물었다. 그러나 그 50명은 45명으로 30명으로 줄다가 10명으로 줄게 되었다. 그러나 그 10명조차도 소돔과 고모라에는 없었다. 그 도시에는 의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진실의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 이전에 이미 죽은 도시였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별들이 있다. 끝없이 팽창해가는 이 우주 공간에서 인간은 자신의 발등만 바라보다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보지 못하고 지구의 공간과 시간에 갇혀버렸다. 지구의식은 인간의 무덤이 되어 버렸다. 그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변덕스러움에 시달리고 상황에 울고불고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 안에서 들끓는 파괴적 충동과 환경과 성격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살도록 창조되어진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성격과 욕망을 지배하도록 지어진 신성한 존재이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나 다를 바 없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한가?

 

 

성서의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 이 단어는 성서의 핵심 열쇠이다. 현재 상태의 나로서는 할 수 없지만 그 분이 함께하신다면 무어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닌가. 나를 위하여 쪼개어진 그리스도의 몸이 내 안에 임할 때 나는 개별화된 그리스도 의식으로 거듭나고 내 생명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나의 나됨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리스도 의식으로 생명의 중심을 세운 사람들은 세속적 욕망에 의해 끝없이 올라오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함을 얻게 될 것이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고 말씀했다. 그렇다면 그 자유는 어떻게 지금 나를 자유하게 하는가.

 

 

의인이란 진리가 주는 자유함을 얻은 사람이다. 생사의 두려움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다. 최소한 그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죄인은 스스로 자신을 조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증오하고 타인에게 고통의 짐이 된다. 의인은 사랑의 빛과 에너지를 발하는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이 에너지와 질량의 등식에서 밝힌 바처럼 물질은 엄청난 빛과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 올 때 물질 몸은 얼나의 빛으로 전환되고 엄청난 빛의 존재로 변형되게 된다.

요한은 이렇게 가록하고 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이 지어졌고 지어진 것 중에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기 때문이다.” (요한 1:3-4)

 

 

역사적 예수는 이천년 전에 사셨는데 어찌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요한은 그리스도는 항상 있어왔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의 달빛이 모든 호수 속에 비치듯이 그리스도의 영은 모든 영혼과 접촉하고 있다. 이천 년 전의 예수는 생명의 빛으로 지금 나에게 임재해 있다. 에너지는 생기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형태만 바뀐다고 하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물질 몸과 의식을 믿음으로 내어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묻혀 있는 영혼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빛으로 드러나게 하신다. 우리가 지구에 있는 동안 성취해야할 과제가 여기에 있다. 내 안에 있는 영혼의 빛을 육신의 됫박으로 덮어두지 말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자. 우리는 목적이 있어 지구에 보내어진 목적 있는 존재이다. 이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