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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Hwa-byeong)

2010.10.20 17:55

하늘 조회 수:3117

 

화병(Hwa-byeong)  /신 영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우리 어머니 세대와 또 그의 어머니들에게서 흔히 들었던 화병(Hwa-byeong)이라는 '울화병(鬱火病)'이 세월을 따라 이 시대에 맞게 용어만 바뀌었을 뿐, 그 병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현대의 제일의 큰 병은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던가. 바로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참는 일이 반복되면 그것이 바로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으키고 더욱 깊어지면 '울화병'이 되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의 많은 경우 자영업을 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오가다 만나 나누는 인사 중에는 '요즘 비지니스 어때요?' 하며 묻는 일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가 불경기에 처해 있으니 그 여파가 몇년 동안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한 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앞두고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의 관심도 예전보다 현실에 처해있으니 민감하게 와 닿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예기치 않게 부부간에 의견이 빗나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도 한다. 모든 것이 편안할 때는 그저 스치고 지날 문제들이 서로 날카로운 마음에서는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엊그제는 교회의 모임에서 좋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서 연구도 할 겸 학교에 다니며 언니 집에서 지내는 한 교수(강사)를 모시고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 성격유형검사를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을 통해 에니어그램(Enneagram)을 접할 기회가 있어 내게는 생활과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귀한 시간이었다. 물론, MBTI - 성격유형검사는 에니어그램과는 조금의 차이는 있겠으나 결국 자기 자신도 때로는 자신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깨달음을 준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지난번 몇 번에 걸친 강의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검사)를 통해서 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가족 간의 섭섭함이 그 누구의 탓만으로 돌릴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남편이나, 아이들이나 나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던 마음이 모두가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닌 바로 나의 탓임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나 자신의 탓'을 가지고 자책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 이유를 충분히 알게 되니 모두가 편안한 것을 괜스레 마음 안에서의 갈등이었음을 고백하고 말았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이 틀린 것도 아니며,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감정이 좌지우지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은 의견일 뿐이기에 존중되어야 하며 이해받아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 공부를 하면서 그 옛날 어머니들이 쓰던 화병(Hwa-byeong)이 떠올랐다. 바로 울화가 치밀어 생기는 '울화병(鬱火病)'이라 하지 않던가. 작은 마음의 상처들을 풀지 못하고 쌓아두고 또 쌓아두면 마음에 응어리가 되어 화병이 되는 것이리라. 그 많은 나라 중에서도 우리 선조에게 가장 많이 두드러진 병이 화병(火病)이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뿌리박힌 제도와 신분 그리고 조선 여인네들의 규범의 틀에서 가슴으로 삭여야 했던 여인네들의 아픔과 상처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하튼, 화병(火病)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발견되는 독특한 질환이라고 한다.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는 1996 화병(火病)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했는데, 이 질환을 영어로 Hwa-byeong(화병)이라고 부른다" 고 한다.

 

특별히, 이민자들에게서 많이 생길 병이기도 하지 않을까. 어릴 적 이민 온 경우는 다행이지만 가정을 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어머니로서 이민 길에 올랐던 경우는 현실에서 겪는 '울화병'이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그 무엇 하나 속 시원히 처리하지 못하고 답답해하는 부모의 심정을 속이 멀쩡한 자식들이 알아차리기나 할까. 서툰 영어로 문의라도 할라치면 어찌 이리 연결선은 끝이 없는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다음 전화 연결로 가고 만다. 마음 같아서는 말(영어) 잘하는 자녀가 해주길 은근히 바라지만 그만 말문을 닫아버리는 부모의 가슴이 되고 만다.

 

그나마 화병(Hwa-byeong)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속 시원히 만나 나눌 수 있는 교회나 절 그리고 한인들의 공동체의 공간이다. 밖에서 풀지 못한 것들을 풀어대는 곳도 다름 아닌 비슷한 공간이다 보니 교회의 목사나 절의 스님이 어찌 마음 편할 날만 있을까. 이 모두가 우리의 삶 속에서 그려지는 한 폭의 풍경화일진대 말이다. 결국, 내가 살고자 남을 살려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해이고 용서이고 화해이고 화합이다. 말이 좋아 남에게 베푼다지만 결국은 내가 살기 위해 선택하는 삶의 한 방법은 아닐까.

 

 

                          

                                                                                                           02/01/2008.

                                                                                                                 하늘.

 

* 신 영의 수필집『살풀이꾼 예수』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