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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십일월의 길목에 서서

2010.11.19 04:38

하늘 조회 수:2976


 2010년 십일월의 길목에 서서  /신 영


 

 


 

십일월, 그 어느 계절보다도 코끝이 찡긋해지는 이 늦가을을 좋아한다. 오색으로 물드는 가을 나뭇잎들을 바라보면서 어느샌가 나도 물들어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리 없는 바람에 제 무게만큼씩 하나 둘 내려놓는 나뭇잎 그리고 쌓이는 낙엽 그들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나를 만난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하지 않았던가. 작은 것 하나에도 귀 기울여지는 계절이다. 가을 햇살에 물들이며 익어가던 들풀과 나뭇잎 그리고 소리 없는 바람, 스산한 바람을 타고 홀연히 젖어드는 가을비 이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사색에 젖게 한다. 십일월이면, 이 자연들과 함께 깊은 몸 앓이 가슴앓이를 한다.

 

코끝이 찡긋해지고 옷깃을 여미게 되는 십일월에는 해마다 오래 묵은 그리움에 한 차례씩 몸살을 앓는다. 그렇게 한 일주일 아프고 나면 새로운 에너지가 온몸과 마음을 타고 도는 것이다. 십일월을 보내고 십이월을 맞이할 때쯤이면 한해 마무리와 함께 새로운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이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십일월의 길목에 서서 '이공일공(2010)'의 한 해 동안의 나 자신의 모습을 잠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한 해를 보내며 잘 살았는지, 제대로 살았는지, 내 색깔과 모양으로 제대로 잘살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잘산다는 것은 또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올 한 해는 여느 해보다 바쁘고 보람있게 보냈던 해이다. 무엇보다도 두 아이가 멀리 떨어져 있어 걱정이 일기도 했었는데, 딸아이와 큰 녀석이 보스턴 근교의 Brandeis University에 편입하게 되어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물론, 막내 녀석이 멀리 있어 서운하기는 하지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어 고마운 마음이다. 지난봄에는 골프를 다시 시작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좋아하던 그림을 다시 시작해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부족한 모습으로 사이버대학원(상담학) 입학허가서를 받아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게는 진정 감사한 한해였다. 곁에서 말없이 후원해주는 남편이 더욱 고맙기만 하다.

 

또한, 몇 년 동안 미지근하던 신앙생활에 조금씩 열정이 생기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올봄에는 오래전에 참석했던 미국교회의 바이블 스터디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교회의 성경공부도 다시 시작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고 은혜이다. 요즘 한달 동안 남편이 Shingles(대상포진帶狀疱疹)에 걸려 한참을 고생하고 있다. 이제는 많이 나아졌지만, 건강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그리고 축복이고 은혜인지를 또 깨닫게 되었다. 이 귀한 시간을 통해 우리 부부의 깊은 사랑을 또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좋은 일 나쁜 일이 어디 따로 있을까. 그저 우리가 사는 동안에 만나지는 일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그 어떠한 일 후의 반응과 대처(How)가 더욱 중요한 이유이다. 가끔 겨울나무를 생각한다. 어찌 사람과 이렇게 닮았을까 하고 감동할 때가 있다. 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며 그들은 마디를 만들고 그 마디를 지나 가지가 자란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한다. 살면서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지만, 어둠의 시간이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그 어둠의 시간이 희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고통(苦痛)은 삶의 한 부분인 까닭이다.

 

바쁜 중에도 한국의 문학지와 미국의 문학지의 한 두 곳에 부족한 수필과 시를 발표할 수 있어 감사했다. 또한, 12월 중에는 '미주한국문인협회'의「수필동인지」와 '창작예술인협회'의 2010년 현대시를 대표하는「특선시인선」을 발간하게 되어 수필 몇 작품과 시 몇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 해를 지내오면서 참으로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모든 일을 어찌 나 혼자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하늘의 크신 은혜와 늘 곁에서 바라봐주고,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후원해주는 남편의 사랑과 세 아이의 따뜻한 격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해를 하나씩 마무리하면서 마음에 남은 고마운 친구들이 몇 있다. 모두가 바쁜 생활에 자주는 못 만났지만, 가끔 만나 속 깊은 긴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어 고맙고 행복했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에서 세상의 반을 얻은 것만큼 고마운 일이기 때문이다. 2010년 1월에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십일월을 맞이하고 보내는 길목에 서서 '한 해 동안을 잘 살았는가?' 하고 내게 묻는다. 12월을 맞으며 2010년 한해의 마무리와 함께 2011년 새해에 대한 꿈과 희망과 소망을 하나 둘 메모지에 적어본다.

 

 

 

                                                                                                    11/13/2010.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