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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리어 "Lady Godiva"

2011.03.02 15:44

구인회 조회 수:6032

 

     

collier004.jpg                                             

                  

                         존 콜리어의  "고다이버 부인"   


 

 어릴적 뛰놀던 할미꽃 억새꽃 춤추는 꺼멍이산, 그 산은 산이 아니라    

 꺼멍이 아저씨네 묘지, 묘비 하나 없이 어머니 젖가슴처럼 크고 작은

 무덤이 반달처럼 솟은 묘똥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놀고, 큰 소나무에

 올라 나무인지 사람인지 사람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사람이 되어 웃고

 친구들과 신명나게 놀던 생각을 하면 절로 웃음이 나고 가슴이 뜁니다.

 그때는 내가 내가 아니라 내가 내 친구였고 그 친구가 또 나인 시절,

 심지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나무와 들꽃, 무덤까지 바로 나였으니,

 친구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친구도 아픈 시절었지요. 

 

 이제는  눈 뜨고 잃어버린 세월,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으리라." 하느님의 선고가

 내려진 이래 수고하고 땀 흘려 일하는 가운데, 내 안에 함께 살던 너는

 사라지고 나만 남게 되는 쓸쓸하고 소외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이 소외와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빈번히 나를 찾으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거룩한 것에 대한 무감각으로 그 때마다 내 혼은

 부재였으며,  어쩌면 일상 생활 속에서 소중한 삶을 소비하고 그만

 돈 버는 기계, 생존의 부속품이 되어버렸나 모릅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것이라고, 그렇게 왔다 가는 것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태고적부터 인간의 가슴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존재에 대한

 거룩한 관심초월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게 모든 인간의 고뇌.

 인간이란 그저 왔다 가는 물질적 존재라기 보다 하느님의 숨결을 나눠

 받은 존재로서 누구나 자신을 초월하여 궁극적 구원을 이룸과 동시에 

 실천과 행위로서 이를 증거할 책임이 각자에게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은 영국의 신고전주의 적인 라파엘전파 화가 존 콜리어

 (Jone Collier,1850~1934)의 '고다이버 부인(Lady Godiva)"

 릴리트, 비너스, 물의 요정, 고백 등 신화와 사실의 세계를 오간 그의

 그림 중에 단연 돋보이는 작품으로서 관습과 규범을 깨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자신의 인생 단면을 역설하려는 듯 실화를 바탕으로한

 그림입니다. 사실 콜리어는 저명한 법조계 집안에서 나서, 맘만 먹으면

 편안하게 성공가도를 달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타고난 조건보다

 위험을 무릅쓰고 의지와 열정으로 미술을 선택하여 화가가 된 사람,

 또한 자기 부인이 첫 딸을 낳고 죽자 당시 법에서 금한 아내의 동생과

 기어이 재혼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지요.

 그런 콜리어의 도전과 경험이 용기와 헌신의 상징 '고다이버 부인' 을

 가장 애틋하게 화폭에 담은 배경이 되지 않았는지 추측해 보며, 먼저

 소개된 바 있는 슬프고도 성스러운 그림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은 영국 중부 코벤트리, 이곳의 잔혹한 통치자

 레오프릭 영주가 농노에 대하여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자, 그의 무거운

 세금 폭탄을 비판하고 경감해 줄 것을 요청한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이 그림에 등장하는 영주의 부인 16세 '고다이버' . 이에 성질난 영주는 

"당신의 농노 사랑이 진심이라면 그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시오.

 만약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바퀴 돌면 세금감면을

 고려하겠다." 며 빈정대며 말했다고 합니다. 한 여인이, 그것도 영주의

 아내가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영지를 돈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의한 것인데, 고다이버 부인은 예상과 달리 이를

 실천하기로 마음 먹고 어느날 아침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말 등에

 올라 영지를 돌게 됩니다. 영주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알몸으로 말타고

 영지를 돈다는 소문을 들은 농노들은 감격한 나머지 너 나 할 것 없이

 약속이라도 한듯 고다이버 부인이 영지를  돌 때 일체 그 벗은 몸을 안

 보기로 하고  대문과 창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려서 백성을 사랑한

 부인의 숭고한 희생에 대하여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고 전합니다.

 

 위 그림에는 당시 막강한 권력자였던 레오프릭 영주의 독선과 아집의

 꽉 막힌 상태를 보여주려 함인지 권력의 상징인 회칠한 대저택과 정문이

 굳게 닫힌 가운데 , 집에서 쫒겨난 것처럼 보이는 한 여인이 옷을 다 벗은

 채로 말 위에 올라타고 있습니다.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에

 서 비장함과 서글픔, 수치심, 남편에 대한 원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회칠한 저택의 벽면과 달리 어둠 속에서 빛으로 충만한 지대와

 주홍빛 치장, 여인의 금빛머리가 부끄러움을 모두 가리우고 남을 만큼

 화려하고 찬란하기까지 합니다. 이웃에 대한 구제와 연민의 보상으로

 벌거벗은 몸조차 오히려 원석과 같이 무엇과도 섞이지 않고 맑고 순수한

 영혼의 빛깔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그림은 다름아닌 이웃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이웃을 위해

 기꺼이 치욕을 감내하고 실천에 옮긴 한 여인의 위대한 용기와

 존엄에 대한 대 서사시.

 

"네 이웃의 피 옆에 빈둥거리며 서 있지 말아라.(레위기19:16)"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저지르는 해악에  일일이 관여하시고

 힘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날이갈수록 인간은 이웃의 고통과 악에 무관심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를 애써 외면하려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악에 대한 무관심은 악을 방치하고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악 자체 보다 더 악한 것이고 바로 이것이 현존하는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이며 가장 큰 아픔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콜리어는 '고다이어 부인' ,이 애틋한 그림을 통해 연약하고 벌거벗은

 한 여인의 희생과 헌신을 기림으로써 하느님 앞에 벌거벗은 인류의

 불의와 악에 대한 무감각을 일깨우고 있으며, 하느님을 보필하여

 이 시대에 사랑와 정의를 이루는 일에 동참할 것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억누름은 그를 지으신 이를 모욕함이요

 없는 사람 동정함은 그를 지으신 이를 높임이라(잠언14:31)"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