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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느 바람에 날아가고 있는가

 

 

인간의 행복과 자유는 신념의 세계가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에 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자각이 새로워지는 것이요, 나와 이 세계에 대한 의식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 무엇이 아닌 ‘I AM’으로서의 ’, 에 대한 명료한 자각만이 인간이 인간으로 설 수 있는 기반이다. 그 기반 위에 설 때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두려움에 시달려온 자신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고귀함을 알게 된다. 죽음보다도 더 두려운 삶의 과제들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게 된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존재와 삶의 집을 짓는 데 있어 어떤 지혜를 가져야 하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집을 지을 때 반석위에 짓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위에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비유가 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면 집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데카그램의 관점으로 본다면 모래란 두려움이요, 반석은 믿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집을 마음과 정서적 안정이라고 한다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의 바람 속에서 늘 안절부절 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비유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는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고 하지 말아야 할 일과 안 해도 될 일에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붓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자는 자신이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자신의 정열을 투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해도 될 일을 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정작 자신이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일에는 도전조차 못해보고 삶이 마감되는 것이다.

바위는 어떤 삶의 공격에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부동심의 상태를 의미한다.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은 인간관계와 일과 소유와 미래에 대하여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각과 느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관찰할 수 있는 근원의 ’(I AM)를 자각했기 때문이고 불멸의 가치 위에 자신의 존재의 집을 세웠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 자각만이 이 세상에서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첩경이다.

인간은 기계와 같다. 어떤 버튼을 누르느냐에 따라 희로애락이 춤을 춘다. 자칫 실수로 분노의 버튼을 잘못 눌렀다가 다시는 서로 못 보는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모래위에 자신의 집을 지은 사람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사람이다. 그들은 거짓 나를 나로 알고 있다. 그들은 신()의 두려움을 투사하여 창조해내고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두려움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과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이 열리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세상을 대처해 가는 사람들은 이런 사랑의 에너지가 나올 수 없다. 그들은 영악할 수는 있으나 지혜로워질 수 없고 신경질적 공격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삶의 조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바람이란 길가다가 걸려 넘어진 돌부리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전해 주는 기분 나쁜 소식일 수도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여덟 가지 바람에 날린다고 말한다. 얻음과 잃음, 숭배와 조롱, 칭찬과 비난, 고통과 기쁨이다. 바람의 정체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바람을 나로 아는 동일화의 정신착란에 빠져 그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린다. 누군가의 칭찬에 우쭐거리는 순간 칭찬의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바람에 날리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통찰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떤 젊은 수행자가 자신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리 밖에 살고 있는 스승에게 이젠 자신이 여덟 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의 시를 지어 보냈다. 그의 스승은 그 시를 읽고 나서 똥꼬, 똥꼬라고 적어서 돌려보냈다. 청년은 그 답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침내 그는 스승을 찾아가 큰 소리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답장을 쓰신 겁니까? 제 시를 읽어보면 이제 제가 여덟 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 수 있지 않습니까?’

자넨 더 이상 여덟 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똥꼬라는 글자가 자네를 이 먼 곳까지 날려 보내지 않았는가?’

 

데카그램에서 두려움의 주제를 지극히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자신의 그 어떤 것들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삶의 패턴을 마감 짓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증명의 무망한 노력으로 인하여 화내고 구걸하고 상처받고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데카그램 도형의 삼각형은 힘과 지혜와 사랑의 삼위일체가 우리 삶의 바위요, ‘라는 존재 안에 뚫어야할 우물임을 밝혀 주고 있다.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도 사랑을 우선하는 것, 그 사랑을 현실화 하는 것이 정화된 인간의 사명이다. 두려움이 지배하는 세상을 사랑의 세상으로 바꾸어 가는 사람은 먼저 두려움의 무덤을 깨치고 나온 사람이다. 그는 육체의 법칙인 두려움을 정화시켜 사랑의 길을 걸어간다. 자신 안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물을 구걸하러 다니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