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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2011.06.15 21:11

물님 조회 수:6870

 

 

    스승

 

나에게는 스승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스승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승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승이 없다면 지금 내가 어느 분야에서든지, 공부하는 제자의 길을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서예를 배운다면 나를 가르쳐 주는 분을 스승으로 존경하는 태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김흥호 선생님은 스승이라는 글자는 자가 합친 것인데, ’자는 스스로 자()이고 자는 이길 승()자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이긴 사람은 깬 사람이고 큰 사람이고 산사람입니다.” 라고 말씀했다.

선생은 지식을 전수하는 사람이다. 좋은 선생은 많은 지식을 잘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스승은 지식의 많고 적음과 상관이 없다. 다만 자기를 알고 자기를 이긴 사람이다. 공자에게 제자들이 선생님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지요?”하고 물었을 때 나는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로 꿰뚫은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처럼 공자는 수많은 제자들을 하나로 꿰뚫어 주는스승이었다. 하나로 뚫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도에 통하고 자기 자신과 통한 자유인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인생은 스승이다.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인생의 핵심이다.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싶다면 그 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인생 낭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를 스승으로 모신 사람들이다. 그 분의 말씀을 배워 전하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지식을 전수해준 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안내해준 분이다, 아는 것을 가르치신 분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알 수 있는 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자신처럼 깬 사람(선지자), 큰 사람(), 산 사람(제사장)이 되도록 이끌었다. 그런 사람을 기름 부음 받은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깬 사람이란 존재의 중심이 서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숨은 물론 생각과 느낌과 행동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세상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다. 큰 사람은 높은 산에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듯이 큰 시야를 가진 사람이다. 큰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철없는 아이들의 싸움터 같은 세상에서 자신과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뿐이다. 왕이란 하늘과 땅과 세상의 중심을 잡아주는 왕 같은 존재이다. 산사람은 썩지 않는 사람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 같은 사람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스승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삼아 제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고 결국 스승이 되어 스승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사람이다. 예수의 마지막 유언을 마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8-20)

예수는 어부였던 베드로사도를 제자로 부를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했다. 사람 낚는 어부란 곧 스승의 비유적 표현이다. 베드로 사도를 비롯해서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스승이신 예수를 만난 이후 깬 사람, 큰 사람, 산 사람이 되었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온 것이 기독교의 아름다운 전통이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종교화되다 못해 취미생활화 되다 보니 제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문제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여러분은 벌써 오래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남을 가르칠 만도 한데 아직도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도 채 이해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큼 자라지를 못하고 언제까지나 젖만 먹는 갓난아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젖만 먹는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5:12-13)

예배당을 수십 년 다녔으면 마땅히 스승이 되어야 할 텐데 여전히 신앙의 초보자로, 젖먹이로 머물러 있는 교회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거의 모든 교회들이 걸려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자기 생각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영적 자각과 진보가 일어날 수 없다. 성서가 말씀하는 진리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교회가 생산적일 수 없다. 자기 고집을 내세우는 교인과 교회가 어찌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을까. 수피공동체나 천주교의 수도회 또는 원불교에 이르기 까지 수행적 전통이 살아있는 곳에서는 직급에 따른 수행의 매뉴얼이 확립되어있다. 숨쉬기와 영적독서와 기도 등의 구체적 매뉴얼은 지속적인 자기 점검을 할 수 있는 기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피그룹에서의 호흡기도는 들숨과 정지 상태와 날숨의 한 싸이클이 2분을 목표로 한다.

예수는 스스로 스승(랍비)이라 칭하기를 좋아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태 23장 참조) 그들은 제자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제자의 길을 가지 않고, 제자 의식이 없는 사람이 스승의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집단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런 스승 밑에서는 목에 힘만 주고 자기 자랑하느라 목청 높이는 사람들만 양산 될 뿐 제자는 길러지지 않는다.

미국 에미서리 공동체에서는 지도자가 말한 뒤에는 미팅 시간이 끝난 뒤에 줄을 서서 자신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가슴이 뜨거워졌는지, 어떤 소명을 알게 되었는지 말하는 것을 보았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 멤버들은 메일로 전화로 자신의 감동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지도자에게 로얄제리를 먹이고 있었다. 지도자로 세우고 더 큰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지도자가 메아리 없는 산처럼 혼자 말하고 외치는 집단에서는 영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 절의 부처가 돌이나 나무로 되어 있어도 거기에 절하고 공을 들여 부처로 만들지 않는가.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고 탄식하지 말고 내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떤 스승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상대방의 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와 중심인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