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다는것
2011.07.17 13:21
철든다는 것
小暑(소서)가 지나고 첫 번째 庚日(경일)이 初伏(초복)이고 열흘 후 두 번째 경일이 中伏(중복)이며 立秋(입추)가 지난 첫 번째 경일이 末伏(말복)이다. 대개 양력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이니 가장 더운 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양의 위대함을 알고 태양의 고마움을 알지만 태양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반면 적도 근처나 사막지역의 사람들은 태양을 몹시 두려워한다. 그곳의 태양에 준비없이 노출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사람은 고마운 존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존재를 섬긴다. 고마운 존재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존재에게 복종한다. 태양을 고마운 존재로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양을 신으로 섬기지 않지만 사막지역의 사람들은 두려운 태양을 신으로 섬긴다.
우리나라에는 어디를 가도 물이 있고 어디를 가도 그늘이 있어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이다. 결코 하나의 길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에서는 길도 하나다. 다른 길은 없다. 다른 길로 가면 그늘을 만나지 못하고 물도 만나지 못하여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런 자연환경에서 유일신 신앙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길도 하나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양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막종교들은 배타성도 강하다. 저항할 수 없는 태양의 위력 앞에 사막의 나라 이집트에서 태양신 신앙, 유일신 신앙이 태동되었다.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은 이집트에서 받아온 것이다. 기독교의 성탄절은 태양신의 생일인 12월 25일을 차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태양의 위력을 실감하고 태양을 두려워하는 때가 있다. 일 년 중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경이다. 뜨거운 태양과 그로 인한 무더위 속에 힘자랑 할 수 없다. 부지런 떨수도 없다. 그러다보면 몸을 상하기 십상이다. 마치 개(犬)가 사람(人) 앞에 엎드리듯이(伏)태양의 위력 앞에 屈伏(굴복) 하는 때이다. 그래서 初伏(초복), 中伏(중복), 末伏(말복)에 伏(업드릴 복)자를 쓰는가 보다. 이 때 즈음 우리는 겸손과 복종을 배워야 한다.
옛날 우리의 선비들은 사람들에게 발을 보이는 것을 극히 꺼려하였다. 그래서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꼭 버선을 신어 발을 가렸다. 그것이 예 였다. 발을 보인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쪽 팔린다”는 말이 그 말인가 싶다.
그러나 선비들이 남들에게 발을 보이는 것이 허락된 때가 있었으니 한여름 계곡물에 발을 씻을 때이다. 그것을 濯足(탁족)이라 한다. 뜨거운 태양의 위력 앞에서 체면치레도 접을 수 있음이다. 그런데 달리 보면 당연히 발을 보여야 한다. 자연의 위력 앞에 건방지게 무슨 체면을 차리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무슨 자존심이며 무슨 체면인가?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어 발을 보여야 한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었던 것처럼 나의 더러움과 나의 부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인간 생활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것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태양이다. 24절기는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정해지는 태양력이다. 태양이 가장 남쪽에 기울어 있어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때가 冬至(동지)이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때가 夏至(하지)다. 농사일은 태양력인 24절기에 따라 해야 한다. 우리말에 “철들었다”는 말은 24절기의 흐름을 알아 계절을 분별 할 줄 아는 것이다. 계절을 알면 농사의 때를 알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24절기를 음력으로 아는 이들이 있는데 잘못 아는 것이다. 음력은 달의 차고 기우는 것으로 추석, 설날, 정월보름, 단오 등이 음력이다.)
겨울은 추워야 하고 여름은 뜨거워야 한다. 너무 덥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철이 덜든이다. 여름이 더워야 농사가 잘된다. 철든이는 그것을 알기에 오히려 더위를 고마워한다. 1994년 여름이 매우 뜨거웠다. 기상관측사상 최고로 더웠다고 한다. 그 결과 병충해가 없어서 거의 모든 농작물이 무농약이었다.
철이 들어야 한다. 계절의 변화를 아는 철만 들것이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는 철이 들어야 할 것이고 인생의 때를 아는 철이 들어야 하고 인류 역사의 때를 아는 철도 들어야 할 것이다. 훌륭한 농군은 계절의 철이 든 이다. 인생의 철이 들고 역사의 철이 든 이가 성인이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마 16:3)
고 말씀하신다. 철이 들면 때를 놓치지도 않고 때를 거스르지도 않는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에 걱정하지도 않는다. 대비하고 순응할 뿐이다.
- 김홍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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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앞에서 신발을 벗으며
철따라 사는 삶
시대의 징조에 눈 뜨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늘 평안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