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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한의 세계여행

2011.07.21 13:13

삼산 조회 수:3030

김홍한의 세계여행

 

  대전에서 기차타고 서울, 평양, 신의주를 거쳐 독립군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심양, 창춘 하얼빈을 지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자. 기차안에서는 1937년 소련에 의해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우리 선조들의 통곡소리가 들리겠지. 시베리아를 달릴 때는 겨울이면 더 좋겠다. 가는 동안 에는 톨스토이와 동행해야지, 모스크바에가면 크레믈린궁전에서 이제는 전설이 된 레닌을 만나야 한다. 밤이 되면 보드카에 양파즙을 섞어 마시며 성 바실리성당을 감상해야지.

 

  독일로 가자, 독일에서는 누구를 만나지? 괴테를 만날까 칸트를 만날까 비스마르크를 만날까. 철학의 저수지 칸트를 만나자. 칸트는 거의 고향을 떠난 일이 없고 시간 맞추어 산책을 한다고 하니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 가서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들러 마리 앙투아네뜨와 케익을 곁들인 꼬냑을 마신다. 시간이 되면 워털루에 들러 나폴레옹을 위로해 주어야지. 내친김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반도의 그라나다, 그곳 알람브라하 궁전의 이슬람문명을 보고싶다. 이탈리아로 갈 때는 한니발장군의 발자취를 따라올라 알프스를 넘자. 코끼리를 타고 넘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로마로 들어갈 때는 시저의 마음이 되어 루비콘강을 건넌다. 꼭 칼을 차고 건너야지. 로마에 가면 면죄부로 지은 베드로 성당, 성당 앞 넓은 회랑 한 가운데서 탈춤을 한번 추어보고 싶다.

미련 없이 로마를 뒤로하고는 로마 문명의 뿌리 그리스로 가자. 거기에서 기독교에 의해서 집단 학살당한 그리스신화의 주인공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이스탄불로 가야지 거기서 동로마제국의 천년을 주마등으로 훑고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 그곳에서 바울 사도를 만나 한국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한 장 받아와야지. 그리고 몽고군의 말을 빌려 타고 바그다드로 간다. 거기서 함무라비를 만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슬픔의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끼워있는 유대인의 기도문을 훔쳐보고 황금사원 밑에 뭍혀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음미한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비아돌로도사를 걸어야지. 이제 태양신의 나라 이집트로 간다. 나는 피라미드에는 관심 없다. 나일강 서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사하라사막이 나를 부른다. 롬멜장군의 짚차를 얻어 타고 태양이 작렬하는 사하라를 달린다. 달리는 길에 좀 더 달려 황금의 나라 말리에까지 가서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황금덩이를 하나 주워올까? 아서라 황금에 눈멀다가 노예로 팔릴라. 이제 오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한다. 어떻게 갈까? 올커니 아라비아 상인들의 낙타를 얻어 타고 가자. 나도 대상이 되어 먼 길을 걸어야지 혹시 사막에서 길을 잃은 <어린왕자>를 만날지도 모른다.

 

  사막을 걷다가 목이마르면 길가메시에게 청춘의 샘물을 나누어 달라고 해야지. 운이 좋아 그 물을 얻어 마실 수 있다면 새 힘을 얻고 맑아진 머리로 짜라투스트라의 웅변을 듣는다.

비단길을 따라갈까? 아니면 알렉산더왕이 간 길을 따라 인도로 갈까? 비단길은 다음기회로 미루자 아무래도 인도로 가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야겠다. 부처님을 만나러 카빌라 성으로 간다. 거기가면 부처님이 있을까? 내가 잠시 착각했다. 그분은 출가한 분이니 고향에는 안계시지. 아마도 보리수 아래에서 참선하고 있겠지. 참선을 방해하기도 그러니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으로 가자.

 

  중국은 너무 넓다. 볼 것 도 너무 많다. 만날 사람도 너무 많다. 볼 것 다 보고 만날 사람 다 만나다 보면 중국에서 늙어 죽을 것 같으니 과감하게 생략하고 한사람만 만나자. 누굴 만날까? 사마천, 그래 사마천을 만나자. 사마천을 만나면 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집으로 가자. 어느 길로 갈까? 그래 만주에서 항일유격대로 활동한 조선인들을 따라가자.

 

  골방에 앉아서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프리카를 두루 돌았다. 노자가 말하기를 “不出戶 知天下(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다 안다.)” 라 했는데 내가 그랬다. 그런데 진작에 하지 못하고 이제야 했다. 왜 이제야 했지? 길이 막혀 못갔다. 길이 뚫려야 마음도 뚫리는데 휴전선이 막혀서 마음도 막혔었다. 우리나라는 육로로는 세계여행을 할 수 없는 나라다. 그래서 마음도 섬이 되었다.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갈 수 없는 섬나라다. 1945년 이래로 우리는 대륙을 잊었다. 기차타고, 자동차 타고, 자전거 타고 대륙을 여행하는 꿈을 잃었다.

 

  지금 우리가 세계 여행 하는 것은 뿌리 없는 여행이다. 중국을 가고 유럽을 가고 성지순례를 가도 단편적이다. 한 줄로 이어지지 못하는 여행이다.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가도 다른 나라를 통해서 가야하니 통탄할 노릇이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대한민국은 섬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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