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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된" 김종학

2011.07.28 14:53

구인회 조회 수:5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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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꽃이 된 김종학   


 

 가슴이 먹먹하고 숨 막히는 70년대의 어느 서늘한 도시

 광갱 안에 매몰된 광부처럼 꽉 막힌 상태에서 저 적막함을 향하여

 무작정 하늘을 향해 곡괭이라도 내두를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

 어둠과 절망을 뚫고 내면과 원생의 심연으로 돌아간 꽃의 화가

 설악雪岳山의 꽃 김종학(1937. 신의주)

 

 그림에 들어서 숱한 그림을 그리고서도 도대체 그림이 무엇인지...!

 박서보, 윤명로 등과 어울려 당시 화단에 열풍이 분 비정형과

 추상의 지대에 서성이다가, 해답을 못찾고 해외로 발걸음을 옮겨

 의미와 예술의 변방을 오갔지만 이마저 방향감각을 잃고 귀국.

 그러나 그런 방황과 탐색은 급기야 이별이란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고

 마치 율곡선생이 어머니를 여의고 산같은 인간의 존엄과 물같은 지혜를

 구하고자 금강산에 든 것 처럼 그림보다 존재에 대한 물음을 안고

 고단한 현실과 감각을 잃은 그림을 떠나 설악에 들어서고 맙니다.

 

 그에게 설악은 깨달음을 구하고자 소림의 굴속에 든 젊은 혜가의 모습

 9년 면벽 정진 보리 달마 菩提達摩, 끄떡 없는 스승 앞에 팔이라도

 잘라 바치고 번뇌로부터 구원을 얻으려는 절박한 신종 혜가

 혜가의 피비린내가 굴 속에 진동하자 태산처럼 요동치 않던 달마의

 물음이 귓전을 때립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가 괴로워 죽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괴로움을 나에게 보여 다오"

 그 마음을 보여 드릴 수 없나이다.

 그 마음을 보여줄 수 없다면 본디 괴로움이란 없는 게 아니더냐?"

 괴로운 마음을 끄집어 내 스승 앞에 팔을 내 던지듯 던 질 수 없었듯이

 김종학 역시, 설악이란 큰 스승 앞에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 자연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거기에서는 괴로움이 괴로움이 아니고 괴로워했던 괴로움도 없었으며, 

 그 역시 산 속에 자신을 맡기면서부터 그가 산이 되고 달과 별이 되어

 산과 같이 흘려 보내고 또 철이 되어 철따라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매서운 겨울을 딛고 일어선 봄꽃, 눈색이, 노루귀, 바람꽃, 진달래

 저 꽃이 험산준령 산 그 어디에서나 돋아나는 것을 봅니다.

 살을 에이는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난 꽃들, 그 꽃의 탄생을

 보면서 그의 그림도 견고한 관념의 알껍질을 깨고 부활하게 됩니다.

 

"이듬해 봄이 오니 설악산 여기저기 꽃 피기 시작하는 야생화가 눈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추상화를 그릴 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야생화가

 위로가 되다 보니 그림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꽃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이발소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며

 화가 취급도 안했었지만, '눈치 보지 말고 그냥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야겠다.' 고 생각하며 계절마다 꽃을 그리게 됐어요."  

   

 결국 그는 그림의 기교나 화풍, 인기도 아니고 자신에 대한

 고독한 방랑과 그 숨막히는 탐색의 결과 자연의 품에서 

 소실된 원생의 창조력과 시퍼렇게 살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순환에 따라 말 없이 피어선 지는 들꽃과 같이

 어느새 영혼속에서 가라앉았다가 솟구치는 강렬한 필력을 회복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ㅡ

 사방에 빛을 받아 본 꽃세계를 여과 없이 그려냅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꽃 그림은 아무도 넘나들지 못한 강인한 생명력과

 지금 당장이라도 개화하려는 듯 떨리는 사랑의 솟구침이 있습니다.

 그 꽃들의 사랑의 간절함과 떨림을 짐작이라도 하는 듯

 그는 형형색색 설악의 꽃들의 찬란한 부활을 추상으로 구상해 내고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평가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전통적인 방식을

 넘어서 물감을 섞지 않고 캔버스에 직접 두텁게 칠하는 채색으로

 강렬한 색상을 구사하게 되지요.

 

"쓸쓸히 죽어가는 꽃모습도 아름답다. -김종학"

 종심소욕 불유구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설악에서의 한 세월은 작가로 하여금 걸리는 것이 줄어들어

 꽃의 탄생과 동시에 꽃의 소멸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입니다

 찬란하게 꽃피고 시원하게 지는 꽃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 작가는

 결국 삶이란 설악의 꽃들처럼 꽃피우는 것이요

 또 후련하게 지는 것이라고...!

 오늘은 초생달, 내일은 반달, 다음은 보름달로 뜨더라도

 더 이상 아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그림 속 달님이 되고 꽃이 되어 한바탕 웃어재낍니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