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鮮能知味(선능지미)

2011.10.18 04:31

물님 조회 수:6475

 

          鮮能知味(선능지미)

 

시편 78편 43-

구약성서의 중심 기둥은 출애굽 사건과 다윗왕의 등장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본격적인 시작이며 완성이기 때문이다. 시편 78편은 이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다윗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하나님은 양우리에서 선택하셨다. 그것은 예수의 말구유처럼 보잘 것 없는 자리의 상징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리이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일하는 다윗의 중심을 보셨다. 그는 ‘내가 이런 짓할 사람이 아닌데--’라고 하지 않고 성심껏 양을 보살폈다. 그는 어떤 악조건과 도전 속에서도 양들을 지켜내었다. 그는 양들을 보살피는 데 있어 마음의 완전함과 솜씨를 드러내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뽑아 이스라엘의 목자로 삼으셨다.

 

 

다윗이 기죽지 않고 골리앗과 싸워 이긴 것을 보면 광야의 맹수들 속에서 양을 지켜내었던 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시심과 전략적 사고와 지혜의 기초를 양우리에서 닦았다. 다윗에 대하여 시편은 ‘백성들을 한 마음으로 보살피며 슬기로운 손으로 인도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 마음’과 ‘슬기’는 어린 시절 양을 칠 때부터 길러진 그의 진면목이었다. 양을 치는 데 있어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실력 없는 사람이 자신의 미숙하고 어리숙함을 자랑하는 것은 겸손일 수 없다. 그것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의 변명일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간은 두 가지에 성공해야 한다. 그것은 사랑과 일이다. 일만 있고 사랑이 빠진 삶을 살았다면 그는 팥 없는 찐빵이다. 그러나 사랑만 있고 일이 없다면 그는 빵의 모양이 없는 꼴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그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자비의 중심에서 지극하고 무한하고 끝까지 기다리는 고요한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독생자를 인류의 제단에 바치는 사랑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인생의 진정한 프로정신을 배워가게 된다. 우리는 사랑에 성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아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사람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군사라고 말한다.

 

 

일꾼이나 군사란 지독한 훈련을 전제로 자기 극기의 길을 가는 사람을 말한다. 훈련 없는 군대는 없다. 어느 분야이든지 훈련 없이 고수나 달인이 될 수 없다. 전문가는 자기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마추어는 자존감과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 시간만 채우고 일당만 받아가는 사람들은 프로의 길을 가는 사람일 수 없다. 불재에서 일당 받고 일한 사람 중에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 완벽하게 일을 끝낼 뿐만 아니라 시간이 나면 틈틈이 불재에 올라와 제초를 하는 등 참한 모습을 보여주곤 하였다. 나는 그를 한옥 짓는 팀에 부탁하여 기술을 배우게 하였고 지금은 유능한 목수가 되었다. 한마디로 싹수가 있는 사람은 밀어주고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올라오게 되어있지 않은가.

 

 

위험한 수술을 할 때 실력 있는 의사를 찾게 되지 마음씨 좋은 의사를 찾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젊은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 아닌가 싶다. 착하고 선량하지만 실력을 기르는 데 게으르다면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데 실패할 수 있다. 그것은 지혜가 없는 신앙생활이다. 사랑과 일에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전문적인 식견과 몰입이 있어야 한다. 치열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중용’에서 공자는 중용의 도를 성취한 사람에 대하여 선능지미(鮮能知味)라는 말로 그 핵심을 표현하고 있다. 참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는 표현이다. 공자를 왜 성인으로 추앙할 수 밖에 없는지 이 한마디가 입증해 주고 있다. 공자는 인체의 9구멍(九竅.구규)으로 맛을 아는 사람은 인생을 통째로 사는 사람이라고 통찰하고 있다. 그런 이는 보아도 먹어도 들어도 똥을 누어도 맛있게 느낄 줄 안다. 한마디로 진정한 뫔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다. 맛을 아는 사람만이 맛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세상을 맛있는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살맛나는 세상이야말로 곧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일 것이다.

 

 

손맛이 있는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재료를 가지고도 맛있게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서도 자기 존재의 맛을 드러낸다. 그러나 솜씨 없는 인간은 좋은 재료들을 가지고도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처럼, 존재 자체가 맛없는 인간은 객관적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이 시대는 물질은 풍요하지만 인간의 행복지수는 땅에 떨어져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기 존재와 삶의 맛을 모르고 돈만 추구하다가 돌아버린 데 있지 않은가.

 

 

맛은 멋이다. 멋은 자신의 스타일을 제대로 드러낼 때 나타난다. ‘제대로’라는 의미는 낭비가 없이 꼭 맞는 그것이다. 바로 이것이 도덕과 경제의 핵심이다. 유능한 프로는 낭비가 없다. 그가 요리사건 도예가건 디자이너건 간에 어떤 분야에서든지 낭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인생의 전문가 역시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죄란 내가 나답지 못하게 사는 것이다. 내 맛을 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식답게 멋있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에 만 골몰하는 사람은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자기 맛을 낼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역설하셨다. 하늘과 땅을 향한 인간의 궁극적 도덕성은 내 삶을 제대로 사는 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늘 신선하고 맛있는 사람이 되자. 바로 이것이 인생 로또에 당첨되는 일 아닌가. 맛있게 먹고 맛있게 누이고 그 분에게 맛있게 먹히우는 삶을 화끈하게 살아보자. 감옥을 짓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 맛 집처럼 훈훈하고 따뜻한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