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법정
2012.02.10 06:20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茶毘(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법정 스님-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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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옷과 재를 걸친 채,
이 지구상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아왔다면
새 하늘로 가는 영만큼은
깊이 소원 할 것입니다
가벼이 새로이 훠 어 이....
그저...
바람처럼 가고 싶다고..
그 기쁜 길로 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