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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10월이면 항암치료 끝나니까 그 때 맛있는 거 사줘요..” 만나서 식사라도 하자는 말에 지금은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다는 힘 없는 말끝에 그래도 어리광처럼, 희망처럼 달았던 그녀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10월을 보내고 고통으로 추운 겨울을 넘기면서 봄이 시작되는 3월, 목련이 채 피기도 전에 그녀는 떠났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삶이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20세까지 활동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던 그녀가 예상하지도 못한 의료사고로 인해 척수장애를 입어 하반신 마비가 되었으며, 그 후, 가슴 아래부터 신경이 마비된 상태에서 아이를 갖고 출산하는 모습을 나는 사역을 하기 전부터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내가 사역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이혼을 하고 형편없이 야윈 애처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와 얼마동안 함께 생활을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우리 신앙공동체 가족 중의 형제 한 사람과  새로운 출발을 할 때에도 주선을 하고 돌보면서 우리는 목회자와 성도라는 관계를 넘어 친근한 형제애로 지내왔습니다.

 

수많은 은혜의 메시지 중에서도 늘 나라는 한 연약한 목사의 메시지만을 그리워해왔던 참으로 고맙고 힘이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장애를 가지게 되면서부터 줄 곳 욕창으로 고생을 해오다가 근래에는 유방암 수술까지 받고 항암치료를 하던 중 숨을 거둔 그녀의 빈소에 그녀는 목련꽃처럼 환하게 예의 그 낙천적인 표정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빈소에는 태동도 느끼지 못한 채 임신을 해서 출산했던 그 딸과 사위가 있었습니다. 험난한 삶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기적을 살다 간 사람이지요.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숨을 거두기 이틀 전까지 몇 마디씩이나마 대화는 나누었지만 스스로 죽는다는 생각을 안했기에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그녀였지만 병상에서 스러져 가는 순간에도 눈만 뜨면 날짜를 헤아리며 곗돈 낼 일을 염려하고 탈 것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안쓰러웠습니다.

 

그녀뿐만이 아니지요. 사실 누구나 살아가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고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자신도 없으니 우리의 삶이란 얼마나 두렵고 불안한 것인가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곡예사가 공중에서 팔을 쭉 펴고 날아갈 때, 확실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것처럼, 이 땅의 생명이 끝나는 날, 육신에서 이탈되는 우리 영혼을 받아 주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귀소본능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왔던 곳, 우리가 다시 갈 곳, 더 나은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하며 날마다 돌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충실한 삶이요 신앙이지요.

 

세상의 온갖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하늘나라의 영광을 반영한 비유요, 그림자에 불과한 것들이라면(계21:10-11, 18-23) 그 실체는 과연 어떨까요?

 

고난의 극치인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곳,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그 해 돋는 나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한시적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다스리는 영원한 진리의 나라. 영생불사하는 꿈의 나라, 이러한 본향을 사모하며 찾아가는 신앙이야말로 부활의 표징이지요.

 

사랑하는 이들이 내 존재의 편린(片鱗)처럼 한 사람씩 떨어져 나갈 때, 나도 한 발자국씩 그 곳으로 가고 있음을 느끼는 날, 고단한 세상의 슬픔과 수고로움을 잠재우듯 봄비가 땅을 적시고 그렇게 나의 육신도 봄 숨으로 차오르고 있어 아직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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