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김해성목사 편지
2012.06.02 22:09
작년 10월, 어머니께서 구토와 어지러움을 호소하셨습니다.
직접 모시고 갈 상황이 아니어서 일단 119에 연락했습니다.
병원의 의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뇌혈관에 쌓인 노폐물이 혈액의 흐름을 막은 상태,
이러한 뇌경색이라면 반신불수나 언어장애로 쓰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어머니는 1년 동안 별다른 이상 없이 지내신 것입니다.
전주여고 출신의 신여성이신 어머니 안월순 전도사는
독재정권에 맞섰던 아들딸 때문에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큰아들(김거성 목사)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고,
작은아들(김해성)은 경찰에 툭하면 폭행당하고 끌려가고
막내딸은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시위와 농성에 참여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어머니께서는 어둡고 잔인한 세력들에게
자식을 뺏기지 않으려고 거리에 나서면서 담대해지셨습니다.
1980년대 말, 제가 담임하던 '산자교회' 교인들이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려 진 것을 확인하고 성남경찰서 앞에서 항의성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회를 진행하던 도중에 경찰들의 폭력이 자행되었습니다.
난입한 경찰에 의해 교인들이 부상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저는 갈비뼈가 부러졌고, 어머니는 팔꿈치 뼈가 부서졌습니다.
같은 병실에 나란히 누워 입원한 모자는 서로를 보며 웃었습니다.
어머니는 기가 막혀서 웃으셨고, 저는 미안한 마음에서 웃었습니다.
어머니는 두 아들이 목회자가 된 것을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국회의원(조부) 집의 며느리로 시집 온 어머니는 칠 년이 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자 할머니와 함께 서원(誓願)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했더니 아들 하나가 아니라
두 아들과 두 딸 등 4남매를 선물로 주셨고, 형과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 어르신들이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목사라고 했습니다.
어릴 적 꿈이 현실화 되면서 형과 저는 목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그냥 어머니가 아닙니다.
동지이자 연인 그리고, 영원한 지지자입니다.
편한 목회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가시밭길을 걷는데도
일체의 반대도 없이 가장 낮은 곳에서 동역해주셨습니다.
목회자인 아들이 끌려가는 외국인노동자를 지키려다 구속되자
검찰청 앞에서 열린 석방촉구기도회에 매일 참석해 기도하셨고
외국인노동자들의 밥과 잠자리를 마련하려고 이리저리 뛰다가
다급해서 찾아가면 집문서를 조용히 내놓으며 도와주셨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결코 투사도 운동가도 아닙니다.
자식들이 그 길을 가지 않았다면 조용히 사셨을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고,
암에 걸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애태우셨고,
끌려간 아들딸을 기다리느라 속이 새까맣게 타셨던 나의 어머니!
역경을 견뎌낸 어머니께서는 초인적인 힘으로 병마를 이겼습니다.
뇌경색 치료를 받고 퇴원하신 어머니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나의 연인도 어느덧 팔순을 맞으셨습니다.
지난 3월에 가족끼리 조촐한 팔순잔치를 했습니다.
청빈한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은 아까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이주민과 다문화 이웃들도 편치 않은데, 그 일을 하는
자식들이 편히 지내지도 못하는 데 무슨 잔치냐고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래도 안할 수는 없어서 친척을 부르지 않고 가족들만 달랑 모였습니다.
점심에 동네 식당에서 돼지갈비를 먹는 것으로 팔순잔치를 대신했습니다.
어머니는 외국인노동자 사역에 중요한 동역자이셨습니다.
궂은일을 도맡는 외국인노동자의 종으로서 사역하셨습니다.
목사의 어머니로서 그 어떤 자리나 대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계신 곳에선 잡음은커녕 은혜와 사랑만 넘쳤습니다.
척추와 관절이 불편해 절룩이면서도 응암동과 가리봉을 오가셨습니다.
병마를 이겨낸 팔순의 어머니는 이제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셨습니다.
빙판 길에서 넘어져 다치신 아버님(83세)을 간병하시면서 지내십니다.
어머니는 사역 현장에서 떠났지만 영영 떠난 게 아닙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저를 위해서 눈물의 기도를 바칩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억만금의 후원보다 더 든든한 자원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아픈 가시 면류관입니다.
한 눈 팔지 말고 종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라는 어머니의 말씀!
이웃 섬김을 가르쳐주신 나의 어머니!
올해 어버이날 역시도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먼저
'지구촌쉼터'의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먼저 달아드릴 것입니다.
서운해 하시기는커녕 하나님의 종으로 자랑스럽게 여겨주신 어머니
온전히 달려가지 못하는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더 오래 사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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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이런 사역자님과 부모님이 계심이 감사합니다.
김해성 목사님이시면 김현희 목사님 부군이시구요.
귀한 사역 잘 감당하시기를..그리고 하나님 다음으로 위대한 스폰서이신 어머님
늘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