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 6개월~1년 동안 시골 농가나 농촌유학센터에 머물면서 그 지역 학교에 다니고, 방과 후에는 센터에서 마련한 다양한 시골생태·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폐교 위기에 놓인 농촌학교를 살리고, 입시경쟁에 내몰린 도시학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교육적 대안으로 농촌유학센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전교생 16명으로 입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놓였던 전북 임실군의 대리초등학교가 농촌유학센터로 거듭났다.
전교생 16명으로 입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놓였던 전북 임실군의 대리초등학교. 교사와 마을주민들이 학교를 살려내기 위해 농촌유학센터를 만들었다. |
양성주 대리마을 농촌유학센터장은 “학생이 줄어 폐교 위기에 몰리면서 교사와 마을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게 됐다.”며 “시골 학교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전북 초·중·고 현직 선생님들의 연구모임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당시 시골유학을 희망하는 도시 학부모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학교와 마을주민, 지자체가 함께 힘을 모아 농촌유학센터를 열게됐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학교에서는 목공예·락밴드·제과제빵 등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여기에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아 계절마다 아이들이 농촌을 체험할 수 있도록 모내기·감자·고구마 수확· 등의 각종 계절별 농가체험도 마련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교사들과 마을 주민들의 입소문으로 통해 번져나갔고, 지난 2009년 농가에서 하숙 형태로 유학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어 이듬해에는 전국에서 12명의 도시 아이들이 농가에 맡겨졌다.전학 오는 학생들이 많아지자, 주민들은 아이들의 숙소 건립에 힘을 쏟았다. 이를 위해 대리초등학교 옆에 자신들의 300여 평의 땅을 내놓았다. 임실군도 2억 원의 건축비를 지원했다. 그 결과 흙벽돌을 활용한 생태 건축 방식으로 지난해 8월, 대리마을 농촌유학센터가 완공됐다. 농촌유학센터가 생기면서 입소문을 듣고 매년 전학 온 학생들이 늘면서 지금은 전교생이 72명이나 된다.
농촌유학은 30여 년 전 일본에서 대안교육의 한 형태로 시작됐다. 도시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 6개월~1년 동안 시골 농가나 농촌유학센터를 머물면서 그 지역 학교에 다니고, 방과 후에는 센터에서 마련한 다양한 시골생태·학습 프로그램을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
마을 주민 김 모(60)씨는 “농촌유학센터가 생기면서부터는 인적이 드물었던 마을이 밝아지기 시작했다.”며 “마을주민들도 신이 나서 아이들 농가체험활동에 적극적이다. 손자 같은 녀석들에게 천자문도 가르치고, 어린 고사리 손들과 농사를 지으며 함께 수확을 할 때는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정규 수업이 끝나는 3시부터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비롯해 농촌유학센터와 함께 아이 돌봄 서비스가 진행된다. 지역 주민 4명이 ‘엄마품 온종일 돌봄강사’로 참여해 하교한 아이들에게 독서 지도는 물론 숙제와 동화도 읽어준다.
또 주말에는 지역 농가의 재능기부로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분야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한다. 농가에 매달려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학교와 농촌유학센터가 제2의 부모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재 농촌유학센터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은 17명. 마을과 학교, 교육청·임실군이 협력체계를 갖추면서 전국 유학센터 가운데 가장 저렴한 월 40만 원으로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농림수산식품부가 농어촌 지역 활력과 도·농 교류를 위해 전국 7개 농어촌유학센터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최저비용으로 농촌과 지역주민, 지자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표모델로 대리마을 농촌유학센터가 1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리마을 농촌유학센터는 마을과 학교, 교육청·임실군이 협력체계를 갖추면서 전국 유학센터 가운데 가장 저렴한 월 40만 원으로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리마을 농촌유학센터는 지난 5월 농림수산식품부가 선정한 7개 농어촌유학센터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양성주 센터장은 “도시 부모들이 맞벌이 부부로 아이들을 보살피기 힘들거나 일부러 어릴 적부터 인성 교육을 시키기 위해 농촌체험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이라며 “농촌유학의 장점은 무엇보다 좋은 자연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어느 것 하나 주입식 교육이 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내 할 수 있도록 한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스스로가 체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양 센터장은 “해바라기를 심고 싶다고 하면 본인들이 직접 씨를 뿌려 기르며 수확의 즐거움과 실패를 경험하는 식”이라며 “다양한 상황 속에서 얻은 경험으로 다음 번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생각해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이 검색만 하면 나올법한 해답들도 이곳에선 직접 자연과 부딪쳐가며 답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 자체가 공부”라고 말했다.
학년 당 15명이 넘지 않아 모든 교과학습이 소규모 체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학생 위주의 일대일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도 이곳만의 장점이다. 특히, 또래 친구들과 공동체 활동을 하므로 사회성도 기를 수 있게 한다. 덕분에 도시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아이들도 이곳에 와서는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교육 효과 덕분에 유학센터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양 센터장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 지금은 아이들을 더 수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며 “처음에는 수도권 지역의 아이들이 농촌유학센터를 찾았지만, 지금은 인근 지역에서도 농촌유학을 보내려는 통에 대기자까지 생겼다.”고 귀띔했다.
대리마을 농촌유학센터에서는 어느 것 하나 주입식 교육이 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내서 할 수 있도록 한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스스로가 체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사진=대리마을 농촌유학센터) |
농촌 유학 2년차인 정예진(12)양은 농촌으로 유학 오기 전까지 수업이 끝나면 영어·수학·피아노 등 하루 3곳이 넘게 학원을 다녔다. 집에 오면 밤 9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 그렇게 일주일이 반복됐다. 공부 외에 취미생활을 가질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다 부모님의 권유로 농촌유학을 오고 나서부터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서울에서는 남들한테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학원도 여러 개 다니느라 제가 뭘 좋아하는지, 왜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몰랐거든요. 시골학교로 오고나서부터는 모든 게 편안해졌어요. 또래 친구들과 산과 들로 뛰어다니면서 놀다보니 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것 같아요.”정 양은 “시골생활에 만족한다.”며 “중학교도 시골에서 다니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터넷 게임보다 시골이 좋은 이유요? 놀 거리가 너무 많거든요. 예전에 서울 살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서 인터넷 게임에 열중했는데, 이제는 전혀 게임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지난해 서울에서 전학 온 안소희(10)양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안 양은 “어제는 친구들과 TV에서만 보던 모내기 체험을 했는데, 서툴러서 물에 빠지곤 했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게임머니 대신 멋진 추억 하나가 더 생겼거든요. 작년에 심을 감자도 곧 수확 철이라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농촌유학센터 아이들이 마을 벽화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대리마을 농촌유학센터) |
지난 3월, 사춘기를 겪으며 힘들어하던 염고은(12)양도 농촌유학센터에 오면서 확 달라진 케이스이다. “인천에서 다닌 학교에서는 한 학년 당 300명이 훌쩍 넘었고, 학교가 끝나면 밤 8시까지 학원에서 중학교 과정을 미리 배웠어요. 항상 북적이는 환경에서 생활하다보니 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요. 그래서 점점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두려웠고, 말수도 적어졌어요.”
부모님 권유로 농촌유학센터에 오긴 했지만 낯선 환경 탓에 일주일간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방 안에만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변화시킨 건 자연 환경이었다. “혼자서 산책을 하면서 걷는데, 불어오는 바람과 푸른 숲들을 보니 자연이 주는 편안함에 푹 빠져버렸어요. 학교 옆 농장에서 매일 닭과 토끼들을 돌보며 제가 직접 씨를 뿌린 고추와 상추도 가꿀 수 있어 즐거워요.” 수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반응도 뜨거워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이들도 늘었다. 현재 귀농·귀촌 가정도 15가정이나 된다. 지금은 집이 없어 이사를 못 올 정도다. 3년 째 두 아이를 농촌유학센터로 보내면서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는 임옥란(40·서울)씨는 “제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꿈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농촌유학을 온 아이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소희(10)양은 “인터넷 게임보다 시골이 좋은 이유요? 놀 거리가 너무 많거든요. 예전에 서울 살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무서움을 달래기 위해서 인터넷 게임에 열중했는데, 이제는 전혀 게임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라고 말했다. |
그는 “요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지내다보면 부족한 게 없어 뭐가 스스로 필요한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농촌유학센터를 보내고 난 뒤에는 일부러 가르치려고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서 무언가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는 모습으로 바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 선생님들이 토끼는 토끼답게, 아름다운 꽃모양은 꽃답게, 각자의 다양성과 개성을 살리는 교육방침이 특히나 마음에 든다. 덕분에 아이들도 하나둘씩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꿈도 갖게 됐다.”고 흐뭇해했다.
현재 농촌유학센터는 전국적으로 35개가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9개가 전라북도에 있다. 전북도청 관계자는 “교육청과 함께 농·어촌 환경과 여건에 맞춘 대안교육을 모델을 세우면서 농촌유학생을 전담하는 마을교사를 육성할 계획”이라며 “농촌유학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이주해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도록 전라북도가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정책기자 박하나(직장인) ladyhana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