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환상' 심어주기는 그만
2013.01.02 08:13
'행복 환상' 심어주기는 그만… 불행의 원인부터 줄여나가야
[새 정부 5년, 행복의 조건]
상대적 박탈과 빈곤 추락 불안감에 불행 느껴
혼자가 아니라 돌봄 받는다는 느낌 들게해야
상대적 박탈과 빈곤 추락 불안감에 불행 느껴
혼자가 아니라 돌봄 받는다는 느낌 들게해야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 입력시간 : 2012.12.31 18:12:32
- 수정시간 : 2013.01.01 22:08:46
지난 반 세기 동안 한국인이 일궈낸 경제적 성장은 눈부시다.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연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07년 2만달러대에 올라섰다. 6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소득이 무려 300배 넘게 커졌다. 지난해 6월에는 인구가 5,000만명을 돌파하며 세계 7번째로 '2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인 나라)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런 물적ㆍ양적 성취가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외려 불평등의 심화, 높은 자살률 등 압축적 성장에 따른 후유증이 2000년대 들어 도드라진다. 우리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며, 어떻게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한국인
여러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인은 줄곧 하위권을 맴돈다. 미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11년 세계 148개국 국민을 상대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긍정적 감정을 물었더니 한국은 97위였다. 1인당 국민 소득이 90위에 불과한 파나마가 파라과이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푸에르토리코가 1위에 오른 2004년 미 미시간대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49위에 머물렀고, 2012년 156개국을 상대로 벌인 유엔의 행복도 설문조사에선 태국(52위)보다 뒤처진 56위였다. OECD가 주거, 소득, 고용, 삶의 만족도 등 11개 범주별로 점수를 산출해 지난해 5월 공개한 '더 나은 삶 지수'(BLI)에서도 36개국 중 24위에 그쳤다.
우리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면서도 상대적 불평등이 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2010년 한국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멕시코(2,242시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 OECD 평균(1,749시간)보다는 444시간이나 많다. 2011년 기준 노인 빈곤율(45.1%)도 OECD 국가 중 수위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0년대 초반 0.2대로 완화했다가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급등, 0.3대로 악화했다. 높은 자살률은 한국인의 삶에 드린 짙은 그림자다. 2010년 한 해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42.6명, 모두 1만5,566명이 자살했다. 2011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31.7명)는 OECD 국가 평균(12.8명)의 2.5배에 육박한다. 2000년(1만1,292달러)부터 10여년 새 2배나 불어난 소득이 허망하고 "행복시대를 열겠다"는 희망의 복음이 절망처럼 들리는 역설적 상황이다.
높아진 기대가 좌절당하기 때문
한국인이 불행감을 느끼는 것은 돈으로 행복을 사지 못한다는 '이스털린 역설'의 전형이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가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면서 물질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은 증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삶의 만족감은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불행을 느끼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이 꼽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과 날로 약해지는 삶의 안정감 등이다. 1980년대부터 소득과 함께 기대 수준이 높아진 상태지만 급속한 계층 이동과 소득 양극화 탓에 기대가 좌절되기 일쑤였던 데다, 정규직 직장이 줄고 가족ㆍ사회관계까지 흔들리면서 앞날이 암담해졌다는 것이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한 경쟁에 내몰려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부(富)의 크기는 커졌지만 분배가 악화돼 돌아오는 게 없으니 불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제든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득한 상태에서 돈 버느라 가족ㆍ친구와 소원해지는 것도 불행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행복시대' 불행 원인 제거부터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약속이다. 이명박 정부의 '7ㆍ4ㆍ7'(연평균 7% 성장, 1인당 소득 4만달러 달성, 세계 7대 강국 진입) 구호, 참여 정부의 '1인당 소득 2만달러 시대' 등 경제성장 목표가 아닌, 국가의 헌법상 의무(행복 추구의 보장)가 새 정부 슬로건으로 채택된 건 그만큼 한국인의 불행이 도를 넘었다는 반증이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섣불리 '행복 환상'을 심을 게 아니라 불행의 원인부터 줄여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임무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불행의 원인을 해결해주는 데 있다"고 조언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할머니가 손자ㆍ손녀를 봐주면 소득공제를 해주거나 지원비를 지급하는 방안 등 고속성장 과정에서 상실한, 가족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게 행복감의 핵심"이라며 "사회가 어렵고 소외된 사람을 배려하도록 독려하는 정책을 정부가 펴야 행복지수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물적ㆍ양적 성취가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외려 불평등의 심화, 높은 자살률 등 압축적 성장에 따른 후유증이 2000년대 들어 도드라진다. 우리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며, 어떻게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한국인
여러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인은 줄곧 하위권을 맴돈다. 미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11년 세계 148개국 국민을 상대로 일상생활에서 느낀 긍정적 감정을 물었더니 한국은 97위였다. 1인당 국민 소득이 90위에 불과한 파나마가 파라과이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푸에르토리코가 1위에 오른 2004년 미 미시간대 행복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49위에 머물렀고, 2012년 156개국을 상대로 벌인 유엔의 행복도 설문조사에선 태국(52위)보다 뒤처진 56위였다. OECD가 주거, 소득, 고용, 삶의 만족도 등 11개 범주별로 점수를 산출해 지난해 5월 공개한 '더 나은 삶 지수'(BLI)에서도 36개국 중 24위에 그쳤다.
우리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면서도 상대적 불평등이 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2010년 한국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멕시코(2,242시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 OECD 평균(1,749시간)보다는 444시간이나 많다. 2011년 기준 노인 빈곤율(45.1%)도 OECD 국가 중 수위다.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0년대 초반 0.2대로 완화했다가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급등, 0.3대로 악화했다. 높은 자살률은 한국인의 삶에 드린 짙은 그림자다. 2010년 한 해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42.6명, 모두 1만5,566명이 자살했다. 2011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31.7명)는 OECD 국가 평균(12.8명)의 2.5배에 육박한다. 2000년(1만1,292달러)부터 10여년 새 2배나 불어난 소득이 허망하고 "행복시대를 열겠다"는 희망의 복음이 절망처럼 들리는 역설적 상황이다.
높아진 기대가 좌절당하기 때문
한국인이 불행감을 느끼는 것은 돈으로 행복을 사지 못한다는 '이스털린 역설'의 전형이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나라가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하면서 물질적으로는 풍족해졌지만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은 증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삶의 만족감은 더 이상 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불행을 느끼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이 꼽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과 날로 약해지는 삶의 안정감 등이다. 1980년대부터 소득과 함께 기대 수준이 높아진 상태지만 급속한 계층 이동과 소득 양극화 탓에 기대가 좌절되기 일쑤였던 데다, 정규직 직장이 줄고 가족ㆍ사회관계까지 흔들리면서 앞날이 암담해졌다는 것이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한 경쟁에 내몰려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부(富)의 크기는 커졌지만 분배가 악화돼 돌아오는 게 없으니 불만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제든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가득한 상태에서 돈 버느라 가족ㆍ친구와 소원해지는 것도 불행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행복시대' 불행 원인 제거부터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약속이다. 이명박 정부의 '7ㆍ4ㆍ7'(연평균 7% 성장, 1인당 소득 4만달러 달성, 세계 7대 강국 진입) 구호, 참여 정부의 '1인당 소득 2만달러 시대' 등 경제성장 목표가 아닌, 국가의 헌법상 의무(행복 추구의 보장)가 새 정부 슬로건으로 채택된 건 그만큼 한국인의 불행이 도를 넘었다는 반증이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섣불리 '행복 환상'을 심을 게 아니라 불행의 원인부터 줄여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임무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불행의 원인을 해결해주는 데 있다"고 조언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할머니가 손자ㆍ손녀를 봐주면 소득공제를 해주거나 지원비를 지급하는 방안 등 고속성장 과정에서 상실한, 가족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게 행복감의 핵심"이라며 "사회가 어렵고 소외된 사람을 배려하도록 독려하는 정책을 정부가 펴야 행복지수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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