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 내 공
2013.01.09 18:22
억겁(億劫)의 흐름에 그어지는 하나의 물살처럼
또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살아온 연륜을 헤아릴 때마다 내 나이가 아닌 듯 늘 낯선 이유는 연륜만큼 아직도 내면이 성숙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한 해를 두고 보더라도 감미롭고 쾌적한 계절과 함께 시련처럼 견디어내야 하는 폭서(暴暑)와 혹한(酷寒)도 있음은 마치 인생살이와도 같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이래 처음으로 여성이 국가 원수로 뽑히는 이례적인 사건을 두고 나름대로 의견들이 있겠지만 사람에게 특별한 기대를 하고 싶지 않은 나는 그저 대과(大過)없이 평탄한 정치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기를 통하여 남녀에 대한 편견도 사라진다면 더욱 좋겠지요. 아니 더 나아가 경우에 따라 여성이 남성보다 강할 수도 있음을 아는 기회가 된다면 더욱 좋겠지요. 선거 기간 TV인터뷰에서 “그렇게 심한 비난과 음해에도 화가 나지 않는가? 그러기에 무섭게 느껴진다..”고 하자 그녀는 “.. 겪어온 환난과 시련이 컸다. 부모가 차례로 총살을 당하는 참사 등을 겪어오면서 어느 때는 자신이 미치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슬픔을 소화를 해내는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내공이 생겨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에는 여성의 나약함 대신 오히려 침착하고 끈질긴 강인함이 보였습니다. 시련 없는 삶이 어디 있으며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그러한 시련과 고난을 내공으로 승화시킬 수 있음이 승리의 삶이지요. 그러한 삶이 베에토오벤은 악성(樂聖)을, 밀턴은 실낙원이라는 대작을 남기게 했지만 그러지 못할 때 고난이란 사람을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던 이가 극심한 고통으로 삶을 포기했던 일은 그 고통의 분량을 가늠하게 합니다.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요? 감기몸살에도 의욕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내 인간은 그보다 더 지푸라기처럼 무력하지만 그러나 전능하신 이에게 전폭적으로 맡겨진다면 스스로의 수련보다 훨씬 소망적이고 무한한 신비(神秘)의 내공을 갖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욥이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순금이 되었던 것처럼(욥23:10), 극한 고난으로 살 소망마저 끊어졌던 바울(고후1:8)이지만 위대한 사역을 온전히 마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불이 붙으려고 할 때 바람이 불면 꺼질 위험이 있지만 제대로 타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더 잘 타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제대로 타오르는 삶이라면 시련은 불길을 더욱 강하게 하는 풀무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는 역사(롬8:28)지요. 기록적인 추위라는 요즘, 나는 겨울을 녹이기라도 할 것처럼 커피를 팔팔 끓이고, 틈틈이 뜨개질로 작은 선물을 나누기도하면서 춥지만 따뜻한 겨울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또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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