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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입명 - 가슴과 배의 통합

2009.03.24 09:57

물님 조회 수:7140

安心立命- 가슴과 배의 통합

 

세월이 가면서 실감나는 것은 마음을 평안하게 갖는 일의 중요성이다. 옛 사람은 일러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하늘이 주신 자신의 소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이런 내용을 줄여 사자성어로 안심입명이라 한다. 동서고금의 성현들의 가르침은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평안을 찾고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지혜에 집중하고 있다. 성서 역시 이에 다름이 없다.


“ 너희는 지금 걷는 길에서 떠나 맨 처음에 걷던 길로 돌아오너라. 너희 조상들이 걷던 그 옛길을 찾아 가거라. 너희가 그 옳은 길을 찾아 따라가면, 너희가 이 땅에서 평안하게 살고 너희 인생이 만족하게 성취될 것이다.” (예례 6:16)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마태 11: 28-30)


예수는 자신의 사역이 수고하고 짐을 진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며 그것을 나누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수 당시의 무거운 짐은 로마의 식민통치 아래서 수탈당하는 민초들의 굶주림, 가난, 억압, 불평등 또는 종교적 율법과 규칙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대적 상황에서는 보람도 희망도 없이 생존에 급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사에서 퇴출되지 않을까, 남들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에 시달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한 근심과 걱정,  과거에 매인 회한과 자책에 시달리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무거운 짐이다.


예수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삶의 길에서 안식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멈추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에서 사용되어진 그리스어의 뜻으로 보면 멈춤과 안식(안식처)은 동의어이다.( anapausis) 종교적인 의미로 이 단어가 사용되어질 경우에는 모든 종류의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성서의 전통에서 보면 안식일의 휴식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져야 할 덕목이다. 한마디로 인생에 있어 저주란 휴식이 없는 삶을 의미한다. 죄지은 아담과 카인에게 내린 벌 역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방황의 삶이었다.


“ 이제 땅이 저주를 받으리라. 또 너는 일생동안 죽도록 일해야 먹고 살 곡식을 거두어 들일 수 있으리라. 너 때문에 땅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성하리라.” (창 3:17-18)

“ 네가 아무리 열심히 땅을 간다 해도 땅은 이제 네게 낟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는 이 땅에서 정처 없이 이리저리 헤매는 신세가 되리라” (창 4:12)

 


아담과 카인의 삶은 오늘 현대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죽도록 힘쓰지만 삶의 보람과 목표도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인간들의 고통은 사실 저주받은 삶이 아닌가. 특히 카인의 고통은 동생 아벨을 죽인 죄책감 때문이었다. 죄의식은 인간의 평안을 빼앗아 간다. 홀로 있으면 온갖 죄의식과 후회가 떠올라서 잠시도 고요하게 있을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왜 멈추어 안식하지 못하고 홀로 자신과 함께 있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안식에 있다고 강조하는 성서의 말씀이 어떤 뜻인가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다.


성서가 말씀하는 안식은 창조행위와 하나로 묶여 있다. 인간이 안식해야할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식은 창조적 안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집에서 혼자 빈둥거리면서 티브이 보며 소일하는 안식의 차원이 아니다. 창조적 안식을 위해서 필요한 절대조건은 영혼의 정화이다. 세상의 소음에서 침묵으로 들어설 수 있는 힘은 영혼의 정화과정과 비례한다. 그래야 욕심으로 원하는 것들이 점차 줄어들어 필요에 따라 살게 되고 안식에 들어서게 된다.


평안한 마음을 잃어버린 채 바쁘게 살아가는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학대일 수 있다. ‘바쁘게 사는 것이 게으른 것이다’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사용하는 말이다. 예수는 참된 안식으로 들어서기 위해 ‘내 멍에’를 매라고 말씀하신다. 이 멍에는 지혜의 상징이다. 사람의 삶을 자유롭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지혜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그 지혜는 온갖 율법과 죄의식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나의 마음을 풀어 하나님께 묶여지게 한다. 또한 우리는 내 삶의 평안을 위하여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온유와 겸손은 평안의 전제 조건이다. 자비와 부드러움과 친절과 비폭력을 예수로부터 배워야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겸손이란 자신에 대한 이상적 이미지(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완충작용)라고 하는 환상에서 깨어나 자신의 진면목을 똑바로 보는 용기이다. 이런 용기 있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방황하지 않는다. 군중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한적하게 머무는 사람, 그들의 가슴에는 평안(安心)이 있고 배에는 자기 소명(立命)의 중심이 굳건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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