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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2009.04.28 09:27

물님 조회 수:6881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에니어그램 수련 중에 ‘그대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저쪽 방안에 있는 피아노 옆에서 왔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왔는데요. 또 어떤 이는 반갑게도 ‘저는 분노의 공간에서 왔는대요’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안에 입력된 생각대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만약 지구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무어라고 대답할까? 또 엉덩이 밑에 있는 지구를 아예 빼버리고 우주의 중심에 앉아 있는 이에게 묻는다면-. 인간의 의식은 공간과 시간의 감각과 차원이 어느 정도인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고기가 물 속에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그 개념이 거의 상실 되어 있다. 그러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 안에 어린 시절부터 입력된 규범에 매여 산다. 그 규범은 각자의 성격의 근간을 이룬다.

에를 들어 에니어그램에서 1번 유형은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는 규범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커트라인이 없는 완벽에의 의지가 자신을 스스로 옥죄이는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모두 결점이 있고 세상은 모두 잘못되어 있다. 그는 모든 대상의 결점만을 볼 뿐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불만의 에너지 장을 가진 사람은 감사할 수 없다. 그는 더 나은 개선을 위해 개혁의 의지를 불사르는 행위가 사실은 자신의 인생을 골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을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과의 만남은 물론 하나님과의 만남 역시 멀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겠다’ 또는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데 모든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착한 삶의 도리라는 규범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물려받은 낡은 규범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려다가 정작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타인의 욕구와 기대를 늘 의식하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못하는 것은 언젠가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 거라는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 배려는 미덕일 수 있지만 내가 빠진 배려는 상대나 본인이나 똑 같이 불편하게 되고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스럽게 해야 한다는 집착을 메시아 컴플렉스라고 한다. 주는 사랑만 하는 사람은 사람에게서나 하나님에게서도 사랑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렇게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 저변에는 상대에 대한 깊은 불신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통찰해야만 한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벧전 1:18) 여기에서 헛된 방식이란 ‘공허하고 의미 없고 허영심이 강하고 천박한’ 삶의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우리들의 뼈 속까지 깊이 각인 되어 있다. 음식 맛을 가지고 다투는 신혼부부는 각자의 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어져 있었고 그에 따라 양가의 어머니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 비판적인 사람들은 아버지의 죄책감을 이어 받고 있다는 것을 ,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삶 가운데는 어머니의 완벽주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구원이란 이런 깊은 착각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자기 불행의 규범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옛 규범이라는 성격의 집착과 강박을 끝없이 반복하는 저주 받은 윤회 상태에 지구인 들은 빠져 있다. 사람들은 무의식에 지배당하고 있고 습관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환상(마야)이 자신을 지배하는 노예적 상태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인간은 환상의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1:23절) 삶이 무한한 중복이 될 때 그것은 어떤 가능성도 사라진 저주의 상태이다. 그러나 육적인 부모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이 될 때 인간은 땅에 속한 모든 관습에서 해방되어 새로 태어 난 존재가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일이다. 우리 각자가 아담 이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헛된 생활방식과 존재 방식을 청산 할 때 우리는 거룩한 형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는 존재이다. 어떤 공간도 시간도 제한 할 수 없는 존재로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나에게 순간순간 주시는 숨과 그 외에 베풀어 주시는 모든 것들을 감사함으로 즐길 뿐 완벽하지 못하다고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향하여 독화살을 날릴 필요는 없다. 오직 그분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나를 통해서 이 지구에 흘러 나가도록 비어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