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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제"를 마치고 -김명곤

2009.05.31 10:38

물님 조회 수:5055 추천:1


어제 노제를 마치고 밤 늦게 돌아 온 저는 곧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나고, 목도 부었더군요. 아침 먹고 잠 들었다가, 점심 먹을 때 일어났다가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고, 저녁을 먹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아직 몸도 무겁고 슬픔도 가시지 않았지만 노제 총감독으로서의 소회를 빨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씁니다.


노제의 막을 열기까지

지난 일요일, 영결식과 노제의 총감독 제의을 받은 저는 기획과 연출 분야에서 저와 호흡이 잘 맞는 후배들에게 소식을 알렸습니다. 후배들은 만사를 제쳐 놓고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알려왔습니다.

노제(路祭)란?

운구행렬이 지나는 길에 돌아가신 분의 친지나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장소를 지날 때, 잠시 멈추고 지내는 제사. 


월요일에는 하루종일 봉하마을 장례준비위원회 측과 긴밀하게 상의했습니다. 영결식은 전체 컨셉과 프로그램에 대해 제가 점검만 하고 모든 준비는 행정안전부의 국가의전팀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며, 노제는 전적으로 제가 책임을 지고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몇몇 후배들과 노제의 기본적인 구성안을 만든 저는 화요일 오전에 기획연출팀을 소집했습니다. 이희진(기획), 유기형(연출) 김태균(구성작가), 김은영(기획부), 김수진(연출부), 송태성(기획부), 조영호, 조승호(영상), 배정혜(안무) 등 역전의 용사들이 속속 모여 들어 즉시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저는 영결식과 노제 전체의 컨셉을 "사람 사는 세상-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로 잡고 구성안을 수정해가고 출연진을 확정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주제를 그렇게 잡은 이유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의 <의혹의 죽음, 그래도 여전히 화두는 "사람!">이라는 글에서 설명했습니다.

그 분은 언제나 "사람 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을 바쳤고, 싸웠고, 분노했고, 도전하며 살아오셨습니다. '
사람'에 대한 사랑과 비전이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비난과 조롱과 저주에도 꿋꿋이 버터 오셨습니다. '
사람'에 대한 겸손한 존중심과 높은 윤리관과 엄격한 도덕율이 있었기에, 그 드높은 이상에 상처를 입힌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부엉이바위 아래 몸을 던지신 겁니다.

김제동(1부 사회), 안치환, 양희은, 윤도현, 우리나라, 도종환(2부 사회), 안진경(추모시), 김진경(추모시), 안숙선(추모창), 장시아(유서낭송) 등 모든 분들이 두말없이 출연을 승락하고, 협조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수요일쯤 돌발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국립무용단(진혼무), 국립창극단(혼맞이 노래), 국립국악관현악단(추모 연주)의 출연에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행정안전부로부터의 협조 공문이 문화부로 안왔다는 것이었지만, 제가 파악한 상황은 정부가 국가가의전으로서의 영결식은 어쩔 수 없이 치르지만, "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협조만을 하려는 방침에 따라 국립예술단체가 노제에 참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전에 민주열사들의 노제가 거대한 시위로 변화되는 체험을 여러 번 한 터라 그에 대해 거부감과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습니다. 그들은 국립단체가 끼어들지 않고 민간 무용가나 연주단으로 간단한 노제가 치러지는 걸 원하는 눈치였지만, 저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각오로 얼마 전까지 저와 손발을 맞추며 일을 했던 문화부와 국립극장를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저는 국립극장장을 해봤기 때문에 최소한의 짧은 시간 안에 행사를 빛나게 해 줄 각 단체들의 역량을 잘 알고 있었고, 전적으로 저를 믿고 출연해 줄 단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같이 화를 내며 이틀간의 실랑이를 벌인 끝에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출연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립창극단만 단체 사정 상 11명의 단원을 다 파견할 수 없고, 5명밖에 파견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문화부도 더 이상 협조를 안하려 한다는 입장을 확인한 저는 기획진에게 국립예술단체 노조위원장의 입장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윤석안 노조위원장은 오히려 비협조적인 극장의 처사에 화를 내며 극장장과 예술감독에게 항의를 하는 등 해결사로 나섰습니다. 결국 목요일 자정이 되어서야 모든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노제 1부의 막이 열리다.

드디어 5월 29일 오전 7시, 저는 시청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7시에 경찰차량을 철수시키기로 약속한 경찰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동안의 실랭이 끝에 7시 40분쯤 경찰차가 철수했습니다. 저희들은 밀려드는 인파와 수시로 발생하는 현장의 문제들을 점검하면서 10시 50분까지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11시부터 영결식을 생중계로 방송한 뒤, 경복궁을 출발한 운구행렬이 도착하는 동안 1부 추모 공연 김제동씨의 사회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작곡가 윤민석씨가 추모 노래로 작곡한 <바보연가>를 노래패 '우리나라'가 부른 다음, 안치환씨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가 울려 퍼지자 많은 시민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노란 색 풍선을 하늘 높이 띄워 날리기도 했습니다. 


이어 양희은씨가 <상록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직접 기타를 치며 불러 화제를 모았던 곡이기도 합니다.


김제동씨는 “여러분의 눈빛과 풍선이 언제나 푸른 상록수와 같은 역사가 되어 아이들에 비춰지길 바란다”고 염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YB(윤도현, 허준, 김진원, 박태희)는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불렀습니다. 윤도현은 “그분과 함께 한 곳은 바로 ‘사람사는 세상’이었습니다. 비록 그분의 몸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분이 남긴 뜻은 가슴 깊이 담겠습니다”며 노래를 열창했습니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다시 광화문에서>도 울려 퍼졌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다시 한번 오늘의 함성 그대로 간직해요."란 가사를 담은 노래는 전 국민을 하나로 묶은 이곳을 추억하자는 의미를 담아 더욱 애절하게 들렸습니다.

김재동씨는 1부의 마지막을 유서의 내용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아름다운 말로 장식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 당신에게 진 신세가 너무도 큽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 분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큽니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 분으로 인해 받은 행복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짐 우리가 오늘부터 나눠지겠다고 다짐합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슬퍼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슴 속, 심장 속에 한조각 퍼즐처럼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미안해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야 말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운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님의 뜻을 저희들이 운명처럼 받아들고 가겠습니다.
화장하라고 하셨습니다. 님을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태우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의 마음 속의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가슴 속의 열정으로 남기겠습니다.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 가슴 속에도 조그만 비석 하나씩 세우겠습니다.




노제 2부의 막이 열리다.


마침내 1시20분쯤 노무현 전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서울광장 안으로 들어서자,
광장은 이내 눈물바다로 변했습니다. 어떤 이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으며, 어떤 이는 아예 목 놓아 울기도 했고, 하늘을 우러르며 소리없이 우는 이도 있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저는 "지금 이 자리는 노무현 전대통령과 모든 국민들이 영원한 인연을 맺는 자리로서 뜨거운 가슴으로 고인의 넋을 맞이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국민들과 함께 하는 국민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노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말로 개식선언을 한 뒤, 크레인에 올라 타고서 "해동조선 대한민국 제 16대 노무현 대통령 복~복~복~"을 외치는 초혼 의식으로 노제의 시작을 열었습니다.

초혼(招魂)이란? 

사람이 돌아가시면 고인이 살았던 집의 지붕 위에 올라가 고인이 평소에 입었던 옷을 흔들며 하늘을 향해 고인의 넋을 알리는 의식. 



이어서 향로를 맨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어너 어허어 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저 건너 봉화산이 북망이로구나
어너 어허어 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넘



비통하고 애절한 소리에 맞춰 국립무용단과 대전의 놀이패 우금치 단원들이 운구차를 한바퀴 돈 뒤 무대 위로 올라 가 진혼의식을 시작했습니다. 


죽은 자와 그를 사랑했던 여인의 비통한 슬픔을 주제로 구성된 <진혼무>가 추어지는 동안 안도현 시인의 추모시가 낭송되었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란 제목의 추모시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절절한 추모의 뜻을 담아냈습니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으깨진 붉은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이어서 김진경 시인은 <노무현 살아오소서>라는 추모시에서 “바보 노무현,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이 꽃피는 나라로 살아오소서, 우리가 반드시 이룰터이니 그 아름다운 나라로 다시 오소서”라고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노무현 살아오소서

....아, 외로운 노무현

그 작고 아름다운 상식을 위한 싸움이야말로
가장 외롭고 힘든 싸움이라고
그 토닥이는 손길로 우리 다독이며 다시 살아오소서....



진혼무가 끝나고 안숙선 명창의 추모창이 이어졌습니다. 임방울 명창이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을 애도하여 창작한 <추억>이란 노래입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진양조의 비통하고 애절한 가락이 서울 광장을 울렸습니다.

추억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데
님은 어디로 행하시는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려던가
그리 쉽게 가려거든 당초에 오지나 말 것을
왔다 가면 그냥 가지
모든 터에다 당신 이름을 두고 가면서
모두에게 슬픔만 남기고 가네.....



이어 도종환 시인이 “고인의 조각난 육신으로 정의로운 것들이 하나가 되고 뉘우치고 용서하고 화합해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는 멘트와 함께 추도 묵념을 이끌었습니다.


묵념이 끝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를 쪽방촌 출신의 사회복지사이며 시인인 정시아 님이 낭독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화장해라···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유서 낭독과 함께 대형 화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이 펼쳐졌고, 시민들은 또 다시 눈물지었습니다.


노제의 절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사랑으로>가 영상화면에서 육성으로 울려퍼진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동안에 할 일이 또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란 가사가 흘러나오자 광장은 온통 눈물 바다를 이뤘습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합창을 했습니다.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 씨, 딸 노정연 씨도 눈믈을 쏟아냈으며, 시민들은 잔디밭에 주저앉아 목 놓아 통곡하기도 했습니다.

합창을 끝낸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노무현 대통령 당신을 사랑합니다”고 외쳤습니다.
노제가 끝난 뒤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을 안치환씨와 우리나라와 함께 <상록수>, <아침이슬>,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의 노래를 부르며 운구행렬을 따라 서울역으로 걸었습니다.
 



노제를 끝내고

나중에 기사를 보니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하늘에 채운이 떴다더군요.

채운(彩雲)이란?
 
여러 빛깔로 아롱진 고운 구름.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이나 얼음 결정에 빛이 회절되어 고운 빛깔로 물들어 보인다. 
채운은 아름답기 때문에 서운(瑞雲), 경운(景雲), 자운(紫雲) 이라고도 하며, 큰 경사가 있을 징조라고 알려져 왔다.  




저는 보지 못했지만 정말 평생에 몇 번 보기 힘들다는 오색 채운이 어렸다면, 아마도 하늘에 우리의 정성과 슬픔이 알려졌나 봅니다.


노제를 마치기까지 수십 명의 스탭들은 끼니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순간순간 발생되는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가며, 그야말로 전쟁 같은 준비 과정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모든 출연진들과 사회자들도 점심까지 굶어가며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주었습니다. 전 그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구름 같이 몰려 와 뙤약볕에서 질서 정연하게 노제가 끝나기까지 함께 해주시고, 자발적으로 광장청소까지 해 주신 수많은 시민여러분, 각자의 집에서 회사에서 길거리에서 영결식과 노제를 시청해 주신 수많은 국민 여러분. 그 분들의 뜨거운 애도와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에 노제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이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마 고인도 하늘에서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내고 계실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국민 여러분,
모두모두 감사해요!
모두모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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