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상주의자의 바램
2009.06.29 14:12
어느 이상주의자의 바램
이규진
그의 사인(死因)은 봄이었다.
늘 그의 삶은 위태로왔으나, 어떤 사람들은 그의 타인과 구별되는
생의 설계도에서 멋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때때로 인정 많은 사람들은
애처로운 순수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의 사인은 하챦은 삼류 센티멘탈이었다.
그는 완전한 세상을 원한다 했고, 삶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 했다.
한 때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매춘을 권유하기도 했고, 모든 몰상식을
기꺼이 실행하고 싶어했다.
그의 사인은 무능력이었다.
그는 부적응 했다. 한 때 그는 알콜중독자보다 술을 마셔댔으나,
현학을 사랑한다 자처하는 그의 정신력은 곧 그를 무알콜상태로 회복시켰고, 그러자 곧 그는 우울증환자가 되어있었다.
그의 사인은 절망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 날 그는 데미안을 품고 그의 나라 수도 한 복판의 번잡한 육교 위에서 굴러 떨어져 차에 치었다.
데미안 표지 안쪽 여백에 그의 유서가 낙서처럼 남아 있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
한 칸의 보금자리와 나를 사랑해 줄 파트너. 직업? 글쎄다.
적당한 무료를 느낄만큼 안정돼 있는 생계를 위한 행위의 반복.
때때로 음악을 들으며 타이루 바닥에서 그녀와 뒹굴다 냄비를 태우는 것.
일주일에 한 번은 이웃을 초대하여 즐기는 만찬.
한 달 에 한 번은 지기와 단 둘이 만나 하루를 보내며 묻어둔 꿈의 조각을 꺼내어 보는 것.
두 달에 한 번은 쓸 데 없는 모임에 참석해서 속물적인 사람들을 약간 경멸하는 기분으로 미친 척 악도 쓰고 춤도 추는 것.
그러다가 일년에 한 번은 그저 습관적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삶.
그의 사인은 최종적으로 자격지심으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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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가 압권이군요
자격지심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길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