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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것이 아니다"(마태오 20:20~28)
      -제220회 1994년3월20일 물님 말씀" -
      예수의 생애는 33년 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3년의 짧은 생애였습니다.
      그 3년도 복음서에 적혀진 내용가지고 유추할 수 있을 뿐, 한 인간의 삶과 정신을 이해하는 데는
      너무나 적은 분량의 자료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분의 삶은 3년이 아니라 밤하늘에
      한 순간 지나가는 별똥별같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의 삶은 양적인 시간으로는 잴 수 없는
      불꽃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분은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가 12:49)고 선언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이 주신 목숨을 하느님께 잘 돌려드릴 수가 있을까하고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의 토로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루가 13:32~)"고 하는 말은 죽음의
      각오와 진리에 대한 확신 없이는 알 수 없는 말입니다. 그 확신은 자기 사명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의 주위에는 언제나 방해자가 따랐고 또 오해하는 사람들 투성이
      였습니다.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마 9:13)고 선언했던 것처럼 외면적 형식보다는 내적인 영성과 삶의
      실천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를 종교적으로 합법화하고 치장하는데 이력이 붙은 세속적인
      사회에서 예수의 진실과 하느님 나라가 쉽게 먹혀 들어갈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마가:9:12) "내 말을 마음에 새겨 들어라, 너희가 남에게 달아주면 달아주는 만큼 받을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마가 4:24)

      § 진리를 들을 기회를 놓치지 말라
      앞에 인용한 말씀을 하실 때의 예수의 마음이 얼마나 절실하고 애타는 마음이었을까요.
      자신이 짦은 생애를 마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에 그렇게 절실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을
      겁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기 위해 무진 노력
      을 다했습니다.
      "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마가 8:36)
      이 말씀에서 '온 세상'은 원어로 코스모스인데 그 뜻은 '장식' 또는 '시간적 세계'를 말합니다.
      즉 한토막의 시간적 한계에 속하는 세계를 뜻합니다. 또한 '목숨'은 단순한 시간적 생명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 사고하고 정서를 느끼고 의지하고 행동하는 주체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유한한 시간, 유한한 물질을 영원하게 생각하고 절대화하기 시작할 때 거기에 인간의 왜곡이
      일어납니다. 예수는 이 세계에 침몰해 있는 사람들을 '죽은 사람' 이라고 말씀합니다.
      옷은 옷이고 몸은 몸인데 옷을 자신의 몸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데 인간의 비극이 있습니다.
      동물은 못과 몸의 구별이 있지만 인간은 엄연한 구별이 있습니다. 이 구별을 할 수 있어야 인간은
      인간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옷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옷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인간은 인간이상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 생애를 통해 증명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자기 초월은 자기 비움에서 즉 섬김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사실을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은 바로 그 자기 비움의 현장에서 일어납니다. 인간은 시간(세상)을 초월하여 영원한 현재에 살 수
      있고,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 여기에 있을 수 있고,인간을 초월하여 거룩한 '나'로 존재할 수 있음을,
      예수는 우리에게 그 세계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제자 빌립보가 예수께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고 했을 때 예수는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요한 14:9)고
      말씀했습니다.오늘날도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시지 못하고 빌립보처럼 하느님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느님을 알려줍니까?
      바로 아버지 품안에 계신 외아들(요한 1:18)이요,또한 하느님 자녀인 우리들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셔 은총과 진리를(요한 1:17)받은 우리들에게서 하느님과 예수가 드러나지 못한
      다면 그것은 예수의 죽음을 오늘 우리가 헛되이 하는 일이 됩니다. 예수는 인생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진리를 들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듣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만 갖추어져 있다면 은혜의 선물은 엄청나게 많은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그릇은 바로 놓아야
      예수는 기적을 찾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많이 당하셨고 그들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뜨겁게 환영하셨습니다. 그 예는 지혜를 구하는 헬라
      사람들이나 마르타와 마리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리는 적당한 태도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얻고자하는 악착스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얻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노력이 없습니다
      " 잘 들어라, 이렇게 우정만으로는 일어나서 빵을 내어주지 않겠지만, 귀챦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겠느냐?"(루가 11:8)
      천지에 가득찬 햇빛도 그 빛을 모아야 불을 일으킬 수 있고 아무리 비가 폭포처럼 쏟아져도 엎어놓은
      그릇에는 한방울도 담겨질 수 없습니다. 진리를 찾고 그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하여 예수를 찾지
      않을 때 예수의 12제자처럼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예수를 쫒아 다니게 되기
      마련입니다. 지상왕국 건설을 고대하면서 그 왕국의 실세노릇을 하려는 꿈에 부풀어 다투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는 언제나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 첫째가 되고자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가9:35)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가 20:28)

      마태복음서 18장은 메시아의 나라에 대한 말씀으로서 그 정수는 28절입니다. 이 본문 속에는
      예수의 오신 의미와 목적이 한마디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진리를 찾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예수의 이땅에 오신 의미와 목적을 올바로 찾아가는 교회여야 합니다.
      내 존재에 대한 무지와 신앙적 자만심 때문에 우리가 섬기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회개합시다.


      1994.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