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의 민주화 공동체 -교회
2009.07.14 06:35
황홀의 민주화 공동체 - 교회
유니온 신학교의 현경교수가 수피들의 생일잔치에 참석하고서 느낀 감동과 충격을 적은 글을 보았다. 첫째는 술 한 방울도 없이 7시간 춤추며 노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루미의 시를 낭송하고 회전 춤을 추면서 차와 주스를 마시며 열정적으로 뜨거운 파티를 했다. 지고한 신성에 취해 살았던 루미는 “ 취하기 위해 술이 필요 없소. 황홀하기 위해 악기도 노래도 필요 없소. 시인도 지도자도 음악도 필요 없소. 그러나 우리는 미친 듯이 기쁘오.” 라고 노래했다.
둘째는 남성이 음식 시중을 들고 여성은 당연한 듯 대접을 받는 모습이었다. 잔치 내내 시중은 남성들이 했고 여성들은 편안하게 앉아 당연한 듯 음식을 즐겼다. 가부장적이고 과도한 여성 억압의 이슬람 문화권 속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의 접대를 받으며 자신의 내적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황홀한 회전’이라는 루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티나 페트로바는 이렇게 말했다. “ 잘랄 앗딘 루미는 ‘황홀의 민주화’를 가르친 스승이다” 페트로바의 말은 민주화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 새로운 지평을 놀랍게 열어 주지 않는가. 수피들은 그들의 종교적 직관에 의해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이 사랑의 에너지로 떨며 회전하면서 삶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창조해 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원자 ( sub-atomic level :원자보다 작은 입자) 수준에서 떨며 회전하고 있는 우주의 큰 사랑의 에너지다. 수피는 그 에너지를 만나는 의식으로서 세마를 한다. 세마는 에고의 노예로부터 벗어나 사랑을 통해 신의 풍성하고 자비롭고 아름다운 현존에 참여하도록 불러낸다. 그들은 에고의 죽음을 상징하는 흰 수의를 입고 자신의 묘비를 상징하는 원통형의 모자를 쓰고, 지축의 각도와 같은 각도로 고개를 기울이고, 신 앞에서 완전히 에고를 죽인다는 표현으로 양팔을 든 채 지구 회전 방향으로 돈다. 이것은 자기 비움을 통해 하늘로부터의 신의 사랑을 받아 이 땅의 공동체와 그 사랑을 나누는 수피들의 삶을 상징한다.
우주적 사랑에 충만한 사람들은 인간을 억압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 자유롭고 자타일여의 일원성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신성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아름다운 남성성이란 부드럽지만 강하고, 우아하지만 절도 있고, 감성적이지만 중심이 잡혀있는 것을 말한다. 현경은 이렇게 적고 있다. “ 그들은 서로 만날 때 뜨겁게 포옹했고, 키스했고, 그들의 심장에 손을 대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연스럽게 음식을 날랐고, 눈물 흘리며 노래했고, 여성 지도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손에 입 맞추고 자신들의 이마에 대었다. 여성들은 자기표현에 자유로웠고, 편안하게 섬김을 받을 줄 알았고, 외모나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이들로 보였다. 에고에서 벗어난 자유, 그리고 신과 나눈 깊은 우정과 친밀감에서 나오는 강한 사랑의 에너지를 그 여성들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터키의 코니아에서 만난 수피 공동체 속에서 나는 종교의 ‘오래된 미래’를 보았다.”
에니어그램에 대한 연구차 코냐를 방문하고 수피공동체를 방문하면서 필자 역시 그들의 열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 시간의 집회를 마칠 때 그들의 옷은 겨울임에도 땀에 젖어 있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우리 예배를 생각하면서 심히 부끄러웠고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사도행전에는 신성한 사랑의 원초적 떨림을 강열하고 폭발적으로 경험하는 사건이 오순절에 있었고 그에 의하여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두려움에 지배 받았던 에고의 영역이 깨어지고 이 세상의 인위적 가치와 기준이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었다. 율법적 종교와 성차별과 모든 인간 억압의 구조가 무너지고 오직 사랑의 가치로 하나 되는 공동체의 출현이었다. 교회는 인간을 어떤 노예화로부터도 철저히 해방시키고자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전했다. 세상은 놀랐고 역사는 기원전과 후로 나뉘어졌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도행전 2장의 생생한 첫 자유와 사랑의 복음은 어떻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가? 성령의 새 술에 취했던 신앙의 선배들과는 달리 우리는 어떤 것에 취해 살고 있는 것일까?
진달래교회의 시작은 공동식사 후에는 남성들이 설거지를 하자는 약속으로 출발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남자의 남자다움은 힘의 과용과 권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사랑의 가슴에서 나온다. 사랑 없는 봉사는 인간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에고를 벗어난 남자의 모습은 남자를 초월하여 신성의 한 면모를 보여 준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는 일을 통하여 힘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셨다. 자유롭고 사랑의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에 자신의 무릎을 스스로 굽혀 봉사하는 모습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일 것이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의 새 술에 취한 ‘황홀의 민주화’ 공동체에서 부터였다. 한국교회가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로써 진정한 ‘황홀한 민주화’를 이루는 성령 충만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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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라는 꽃말이 "진다"인 것처럼
이 세상에서 지고 싶지 않은 욕망의 파편에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무릎을 굽혀 기쁘게 질 수 있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지 모릅니다.